지금으로부터 12년전입니다.
우리 큰아이가 태어난지 6개월쯤 되던 그 어느날 새벽.
초보엄마라 매일 허둥지둥 아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힘들어 피곤이 덕지덕지 쌓인 그 날.
어디선가 꿈결인지 뭔지 이상한 냄새와 기운이 날 깨우는듯
했지만 몸이 도대체 말을 듣질 않아 계속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문득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에 화들짝 놀라
안방 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실 가득 희뿌연 연기가 가득하고
가스레인지위에선 벌건 불길이 천장을 향해 솟구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지,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습니다.
'불, 불..불이야'
소리는 잠겨 밖으로 나오질 않고 부리나케 남편을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
"저기요, 아저씨 우리집에 불이 났거든요. 빨리 좀 오세요."
" 아주머니 댁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네? ...... "
생각이 나질 않는겁니다.
"안양시 안양시..."
그러고 있는 사이 남편은 침착하게 가스레인지 밸브 잠그고
불이 난 진원지 정리를 하고 있더군요.
"죄송하다고 하고 빨리 전화 끊어."
남편의 핀잔을 들으며 수화기를 내려 놓고도 후들후들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하려해도 우리집 번지 수가 생각나지 않으니
무지 놀랐나 봅니다.
그후로 한달이상 우리집은 불내와 시커먼 그을음으로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큰 불이 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당시 전세 살고 있었는데 거금 들여 새로 페인트 칠하고 도배하고 가스레인지대 새로 달고 했습니다.
불이 난 원인을 이야기 하지 않았군요.
우리 아들이 아기때 어찌나 잠이 없고 까탈스럽던지
우유 한병을 타 주면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이 들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금새 깨서 울고.....
그렇게 쌓인 우유병이 여러개.
새벽에 일어나 보니 소독해 놓은 우유병이 한개도 없지 뭐예요.
그래서 깨끗이 씻어 소독한답시고 가스불 위애 올려 놓고는 깜박 잠이 든것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 눈 붙힌 것 같은데
세상에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는 소독기가 벌겋게 불이 붙었으니...
소독기 안의 우유병이 플라스틱이라 녹아 내려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후로 전자소독기로 바꾸었습니다.
언제 또 이런 불상사가 생길지 예측할수 없기에.
요즘 저 자나깨나 불조심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가스 불 쓰고 난 후 밸브 잠그는 것도 잊지 않구요.
사람이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위급 상황이 되니까 우리 집 주소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남자들이 대범하고 침착한것 같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는가 봅니다.
오늘 숙제 끝.
영재님 숙제 검사 후 별 도장 찍어 주세요.
몇개 받을 수 있을까?
기다리는 재미를 한가지 더 추가합니다.
코맙습니다.
드디어 행복한 네시가 되었습니다.
숙제 끝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방송 들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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