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에 사랑을 싣고(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부경
2003.08.18
조회 62
우리 아버지는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알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넓디넓은 집에 따악 한개의 전화로도 충분하다고 절대로 전화를 사시지 않으셨지요.

물론 그다지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저를 찾는 전화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이거...이야기가 180도로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몰래 사귄 남자친구로 부터 연락을 받아야 하는데요.

게슈타포와 같은 우리 아버지의 철퉁수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딜 갈려구? 공부해! 공부! 대학생이라고 놀고 먹을 생각은 애시당초 안하는게 나아 알았지?"
하시면서요.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더 크게 뜨시면서 저의 출입을 단단하게 규제하시는데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남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제가 즐겁게 받을 수있겠습니까?

저는 진짜 죽을 맛이었습니다.

세상 살맛이 전혀 나지 않는데요!

아니...대학생의 귀가 시간이 저녁 8시면 말 다했죠!
그렇다고 해서 제 방에다 전화를 놔주시는 것도 아니고..
나의 사랑! 멋진 로미오와의 밀어를 나누어야 하는데..
오직 유일한 안방 속의 전화기로 말이죠.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아버지 앞에서
"으응! 자갸. 따랑해! 내 꿈꿔!"
를 말 할 수있겠습니까?

저는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느라 끙끙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옆 집이 이사하는 날이었죠.

잔뜩 짐을 실어 놓은 트럭에 타는 옆 집 아줌마가 쓸모 없어진 모양인 지 전화기 한대를 전봇대 옆에다가 툭하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눈이 번쩍 띄였지요.
일단 줏었습니다.
멀쩡한 것인 지 살필 겨를도 없었습니다.
절대로 새 전화기를 사주실 리 없는 아버지를 하루 죙일 원망하고 있기 보다는 그저 헌 전화기라도 주워서 내 방에 다는 것이 현명하리라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전화선을 구입해서 이리 붙이고 저리 붙였습니다.
정말 제가 봐도 볼품없는 전화기더군요.
검정 테이프는 몸통이고 전화선이고 할 것 없이 덕지 덕지 붙어있고...
때가 묻어서 찐덕거리는 다이얼을 검지 손가락으로 돌려보는데...띠리릭! 하고 신호음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얏호!
저는 신이났습니다.
진짜 더럽기 그지 없고 또 버튼 식도 아닌 디리릭 디리릭.. 돌려대는 다이얼 식이었지만 나의 로미오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가 버젓하게 제 방안에 있는 것이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을 해 주셨고 저는 그 날부터 신나는 심야의 전화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답니다.
물론 지금이야 깨끗이 잊어버린 첫 사랑의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그 때의 뛰는 가슴은 지금처럼 아줌마가 되어 버린 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가슴 시린 추억으로 변해 버렸네요.

아! 첫사랑의 추억을 누가 돌려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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