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의 감성사전 "고추 따던날"을 듣고..
김태홍
2003.08.25
조회 73

유영재님의 감성사전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27살인 저이지만 저도 어릴때 고추를 따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나서요..

갑자기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유영재님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저에게도 고추밭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부족하지만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고향에선 이맘때면 고추따기에 온 동네가 정신없는 시기입니다.

어제는 시골에 벌초하러 갔다가 고추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파란 고추잎과 빨간 고추가 보여야할 곳엔 중간중간

빨갛게 지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고추나무들이 말라 있었네요.

마음이 어찌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전 충청북도의 아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자랐답니다.

그시절 고추는 우리집의 주 수입원이었어요.

논은 없었고 밭만 있었기에 고추를 심고 파는 일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고추밭을 지날때면 도회지에서 자란 친구들처럼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씩 더보게 되네요.

고추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면..

고추는 봄이 오면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운후

밭에 비닐을 깔고 말뚝도 박은후 옮겨 심지요.. 

큰 포대에 비닐을 잔득 넣고서

밭고랑끝에 어머니가 흙으로 비늘을 덮고 나면

그때 포대끝을 잡고 밭고랑에 비늘을 풀면서

계속 끌고 나갔습니다.  마치 한마리의 소가 된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웃을수도 있겠지만 재밌고 삼형제가 서로 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 깔린 비닐 포장 안으로 모종을 옮겨 심었지요..

작은 작대기 하나로 구멍을 뚫고 여린 고추나무를 심고 주전자로

물을 주고.. 그렇게 하고 나면 고추나무는 너무도 빨리 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들었던건 밭매기 였습니다.

온갖 풀들이 잡다한 고랑사이에 들어가 호미 하나로 그 큰 밭에 있는

풀들을 뽑아내는 일은 어릴땐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어요.

그후 고추따기도 쉽지만은 않았죠..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가 한 나무에만도 수십개이상은 있었고

한 고랑을 허리를 바짝 숙이고 지나가고 나면 비료포대엔 하나가득 고추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뉘엇뉘엇 질때까지 고추를 따다보면 손에선 매운기가 진동하고

자칫 눈이라도 비볐다간 그 매움에 혼이 나곤했어요.

간혹, 고추나무 사이로 고추 잠자리가 말뚝에 앉기도 했었는데..

살금살금 기어가 잠자리를 잡을라 치면 곧 날아올라 허탈하게 했던 기억도 나고요

막내는 고추를 따다가 밭고랑 사이에서 잠을 자기도 해서

밭고랑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면 찾아가보면 비료포대를 베개삼아 누워

세상 모르게 자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어릴적 기억엔.. 고추 농사 만큼 힘들었던게 없었는데..

비료포대에 비닐을 담아 끌던 기억과 김매던 기억들..

고추밭 가장자리에 심었던 콩이며, 부추, 상추를 쌓온 점심에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큰 수박한덩이를 따다가 온 가족이 사이좋게 나눠 먹기도 하고

추석때면 밭 한곳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도 따던..

그 고추밭엔 아버지 산소가 있습니다.

그날 벌초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 많이 났었답니다.

전 영재의 감성사전을 듣다보면 눈물날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송 많이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부족한글 읽어주신 모든분들에게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참.. 어머니를 위해서 10인의 사랑의 콘서트 공연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조용필 공연을 신청했었는데.. 당첨되지 못했네요..

어머니가 조용필을 많이 좋아했었거든요..

참.. 도깨비 스톰 공연은 보여드렸는데.. 여기 저기 다 돌아다니면서 아들자랑을

하시네요.. 그 모습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시골에서 고생만 하시다 부천으로 이사와서 온갖 고생 다하시며

아들 삼형제를 키우셨는데.. 아직 효도도 못하고 살았어요..

어머니가 항상 기뻐하도록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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