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경상도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명절이 아니고서는 집에 자주 내려가지도 못하지요.
몇해 전, 추석을 앞두고 저는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어요. 부모님께 인사는 못 드렸지만 부모님도 모두 아시고 계셨고, 다음해에는 결혼을 하자고 양쪽 집에서 대충 심정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던 상태였죠.
그런데 느닷없이 헤어지게 되었고, 저는 내심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그러다 추석이 다가왔고, 마음은 안 좋았지만 내색을 할수가 없었기에, 저는 해마다 그 남자가 제 손에 들려주었던 선물을 제가 구입해서는, 그 남자가 선물한 것인양 들고 갔습니다.
추석을 하루 앞둔 저녁,
음식준비를 끝내고 다들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제 결혼문제를 꺼내시더군요.
저는 안그래도 마음이 불편한데 아버지가 자꾸 결혼문제로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자 듣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마시라고 말한다는 것이 좀 쏘아붙이는 말이 되어 버렸죠.
그 말에 아버지 심기가 상하셨나 봐요.
너는 나잇살도 적지않은 녀석이 말버릇이 그게 뭐냐...하시면서
역정을 내시기 시작하시는 거에요.
우리 아버지 성격이 워낙에 불같으셔서 화가 나시면 그냥 참지 못하시거든요. 식구들이 그걸 알기에 아버지 화 나시면 그냥 고분고분 알았습니다. 하고 끝내는데,
그날따라 저는 그게 안 되더라구요.
저 역시 화를 버럭버럭 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저랑 아버지의 말싸움이 시작되어 버렸어요.
제가 머리에 털나고 아버지랑 맞장을 떠보긴 그때가 첨이었을 겁니다.
결국 저는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엉엉 울면서
딸한테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말할수 있냐,
사과안하시면 다신 아버지 안본다,
그렇게 소릴 치고는 방으로 들어와 버렸죠.
침대에 누워서 어찌나 울어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울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정말 아버지한테 서러워서 이렇게 울고 있는걸까?'
저 그 남자랑 헤어진뒤에 제대로 한번 울어본 적이 없거든요.
눈물을 꾹꾹 눌러담고 참기만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참고 있던 눈물샘을 건드려주신 셈이죠.
사실, 저는 아버지 때문에 서러웠던게 아니라
그 남자때문에, 아니 헤어진 우리의 관계때문에
그렇게 서러웠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다른곳에서 터졌습니다.
아버지가 다음날 새벽, 슬그머니 집을 나가버리신 것이죠.
우린 모두 근처에 있는 논에 나가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진, 논에도 밭에도 계시지 않았어요.
차를 몰고 멀리 가버리신 것이죠.
그날 우리는 제사도 지내지 못했습니다.
모두 거실에 모여앉아서 멍하니 아버지를 기다렸죠.
아버진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오셨어요.
저한텐 눈도 안 마주치셨고,
방안에 들어가셔서 나오시지도 않았죠.
후에 엄마에게 들은바로는 혼자서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셨다고 하네요.
다 키운 딸자식이 저렇게 아버지한테 못땠게 대하는걸 보고
내가 자식을 잘못키웠구나, 내가 헛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하네요.
저는 아버지께 사과했지만, 결국 아버진 제가 돌아오는 그 날까지 저랑 눈 한번 안 마주치셨죠.
그런 아버지가 화해하는데는 몇달의 시간이 걸렸답니다.
물론 지금은 사이가 좋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좋아진 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죠.
아마도 내년 추석연휴에는,
저도 혼자가 아닌 둘이서 내려가게 될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셔서 한해가 다르게 기력이 쇠해지시는
아버지 모습을 뵐때면
그때처럼 역정을 내시던 때가 더 좋았는데...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신청곡은... 이동원의 향수
<두바퀴> 아버지의 가출
신은주
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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