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열차도 길을 잃는다
최미란
2003.09.17
조회 116
때론 열차도 길을 잃는다

-남기윤-

아직은 가을볕이 살가운 오후,
어디 오늘은 낯선 곳으로 시간여행이나 한번 떠나볼거나!
작은 간이역 매표소 주변을 서성이다
작심하고 이내 창구를 두드리네.
한 장의 좌석권마저 메말라버렸나
요즘 사람들의 야박한 인심 모양...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입석표 한 장 들고
휘휘 찬바람 부는 산골짜기를 나뒹굴 듯 비집고 들어간 광주행 입석열차,
그 안에 구겨진 내 마음을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덜커덩 낮은 한숨소리로,
살아온 인생만큼 빠르게 다시 뒷걸음치는 열차...
그 속에서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오래된 신문지를 깔고 쭈그려 앉아,
지나온 날들의 즐거웠던 추억을 곰곰이 회상해본다.
기차는 즐거웠던 내 추억마저도 함께 싣고서 떠난다.


이 고단한 육신 부릴 곳은 과연 어딜까! 추억마저 길을 잃는데
세상의 거리에 내리는 비처럼 한없이 차가운 게 인생이라면
세상의 난바다에 나부끼는 눈처럼 한없이 쓸쓸한 게 인생이라면

차라리 나 여기 이대로 누워 잠들어 속절없이 내달리는 열차 되고파!

그래서 사람들 사이로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때론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세상의 한 모퉁이를 아랑곳 않고
낮 밤 없이 돌고 돌아 수많은 추억들을 부려놓는 이 열차처럼,
그 아래 죽은 듯 인내하며 함께 버티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내 사랑하는 동반자 철길과 오래오래 사랑하다 떠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함께 하다 마지막으로 바다가 바라 뵈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다다르면
그때서야 고단한 서로의 몸 누이며 행복하게, 행복하게 잠들었으면......

***************
:::: 기차는 버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교통수단입니다.
기차라는 단어는 추억, 여행, 바다같은 단어가 늘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거기에 밤기차, 그리고 간이역까지 더 하면 우리가 익히 상상해온 기차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더해지죠.
신경숙의 '새야 새야'에서
기차는 귀가 안들리는 큰 놈(정말 주인공이름이 '큰 놈'이었습니다.)에게 금기의 공간이며 또한 기차길을 베고 누워 잠들어 버린 마지막 안식처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차는 버스와는 달리
정해진 레일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운명'의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런 레일이란 운명에도 불구하고
'열차도 길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끔은 길을 잃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테지요...
예상된 삶... 예상된 종착역만을 목숨걸고 달리는 것보다는...

음악 신청합니다.
기차와 소나무

오늘도 네시를 기다리며....
님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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