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편지>>
널럴럴
2003.09.18
조회 82
고등학교 시절 저는 고등부 회장오빠를 진짜 좋아했습니다.
한마디로 그 이유를 밝히자면 무자게 못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로 말씀하겠지만 저는 제 분수에 맞게 못생긴 사람을 선호하였습니다.
왜...영재오라보니처럼 잘생긴 사람들은 턱...하고 거부감부터 느끼게 되거든요.
물론 유가속은 영재님의 목소리만 느낄 수있으니까 좋습니다만...하하하...
아무튼 저는 지지리도 못생긴 회장오빠를 진짜 흠모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주위의 친구들은 그 오빠를 쳐다도 안보니 안심빵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느긋한 마음을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문장실력 형편없었지만 자신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오빠를 좋아할 사람 없었으니 경쟁대상자는 제로 아닙니까?

글씨도 굳이 이쁘게 쓸 필요 없었습니다.
아마 저만이 그 오빠를 좋아할 줄 알았으니까요..
성의를 들이지 않으니까...제가 써 놓구서도 진짜 구질구질한 내용인 것입니다.

"밤 하늘의 별 같은 오빠에게..."

오빠!
뭐하세요?
저는 지금 별을 보면서 오빠의 모습을 생각해요.
큰곰자리..
꼭 오빠같아요.
오빠는 곰같거든요.
..

물론 저는 작은 곰 자리...
사람들은 저를 보고 곰같다고 해요.


그것을 보면 오빠와 저는 곰커플인가요?

....
....
....
....(중략)

그러면 오빠!
교회에서 봐요.
담 주에 오빠가 헌신예배 사회를 보시죠?
꼭 곰같은 모습으로 멋지게 진행해주세요...



저는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물론 그 뒤로 오빠는 저를 보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어대는 것입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하며 곰곰( 또 곰이네...) 이 생각을 해 봤지만 미련곰탱이처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서서히 저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슬펐습니다.
밤하늘의 큰 곰자리는 저렇게 선명한데..
왜 오빠는 나의 가슴 속에 별이 되어주지 않는 것일까?

생각할 수록 서글프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진짜 눈알 튀어나올 만큼 분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여부회장이던 명숙이가 말이죠.
오빠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저 만치서 걸어가는데...어쩌면 그렇게 뒷모습이 다정하고 이쁘기만 한 것입니까?
명숙이는 자꾸만 팔짱을 끼고 싶은 지 제가 뒤에서 바라보는 줄도 모르고 오빠의 팔 속으로 자신의 팔을 넣을려다 말고..또 넣을려다 말고 를 반복하는데...마음 같아선 그 팔을 화악 하고 잡아당기고만 싶었지만 꾹 참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하며 슬쩍 따라가 보았습니다.

"명숙아! 정말 네가 쓴 편지 감동적이었어.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나를 생각한다구? 그러니까...북두칠성처럼 커다란 팔을 펴서 꿈을 떠내라는 것인지? 국자처럼 많이 많이..?"
하자 명숙이는 여시처럼 요망한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에..오빠! 오빠는 정말 북두칠성같아요."
하는데..
저는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제 아둔한 편지내용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그렇죠!
북두칠성처럼 멋지다고 해야했는데..미련곰탱이처럼 큰곰자리가 어떻구..작은 곰 자리가 어떻구했으니..나라도 진짜 그 소리 들으면 북두칠성으로 솔깃해지겠다...
싶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그 시절 국자에게 철저하게 져버린 곰탱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절대로 편지 같은 것은 쓰지 않았습니다.
또 실수하면 어쩌게요?
편지는 무서버...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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