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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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6
조회 141
여학교시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고맙고 그리운 김창섭선생님이 곁에 계십니다.
그래도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하시면서
제 진로 문제를 함께 걱정해 주시곤 하셨던 선생님.
선생님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시는 분이십니다.
유난히 쌍시옷 발음이 강했던,선생님을 노란쎅~ 빨간쎅~
선생님이라고 불렸어요. 미술선생님이셨던거죠.
베이지 골덴 마의를 즐겨 입으셔서....우리는 똥가다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했어요. 외모도 출충하셔서 인기도 많았습니다.
여하튼 누가보던지.
겉으로는 눈에 띄지 않게 얌전해 보였지만,
나자신은 누구보다 불량성을 띤 요주의 인물이였다는 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만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걸 눈치 채셨는지 제게 무던히도 관심을 두셨으니 말입니다.
집이 멀고, 그때는 몸이 약했던 저는 자별한 대우를 받아
학교앞 선생님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공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강원도네에서 우수하다는 춘천여고에 저를
미술 특기생으로 적극 추천, 진학시키고 싶어하셨지만,
부모님의 학구열에 비해 지나치게 가난했던,
우리집 형편으로는.....어림도 없는 일.
저는 선생님 앞에서 가난하다는 걸 내색하지 않았죠.
그래서 어느날, 선생님은 저희집을 찾아오셨어요.
저희집을 다녀가신 뒤로는 진로 문제를 커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형제 뒤바라지에 등허리 휘시던 부모님을
직접 대면 하시니......말문이 막히신거죠.
그 길로 선생님은 넉넉지도 않을텐데 자비를 털어
시내에 있는 화실에 저를 등록 시켜주셨습니다.
화실수업은 저에게 너무도 과분했지만,
분에 넘치는 수업으로 인해 그래도 행복했어요....
대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대는 걸로
제 본분을 다했습니다.
여중졸업과 동시에 선생님도 가까운 여고로 전근을 가셨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제가 여고를 졸업할때까지 틈틈히
화실로 찾아와서 모자라는 화실비를 대신 충당해주곤 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열의에 힘입어 저는 여고 삼년 내내....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선생님은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지요.
그때 선생님의 기뻐하시던 표정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졸업한 뒤로는 찾아뵙지 않아 연락이 끊어졌다는 핑게로
더욱 선생님 앞에 나설수가 없네요.
이렇게 두바퀴를 대신해서 글을 쓰고 있는 저는,그래서
못난 제자요. 선생님 앞에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을 차마 보일수가 없는건지.....미안함을 갚을
용기도 없어 한스럽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복판을
푹 가르는 듯한 아픔을 자아내게 합니다.
.박효신의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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