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지사의 한 페이지를 또 들춰내야하니
마음은 아파도 더 이상 감출것도 없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학한 학교에서 졸업을 하는게당연하지만
이몸은 어떻게 된 팔자인지 입학한 학교 따로 졸업한 학교가
다르다 보니 만났던 선생님 또한 많았답니다.
입학 ,퇴학, 전학,휴학,복학등...
골치아팠던 학교생활이였지만 그래도 선생님 잘 만난덕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그분에 대한 고마운마음을 한순간도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시절 학기초엔 성적은 학급에서 상위권에 있었는데
학교가기싫어서 만화방에 가방을 맡겨놓고 열차타고 경주에
자주놀러를 가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헤매고 이게 아니구나싶어
다시 마음잡고 공부를하고...이렇게 반복을하면서 그럭저럭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되니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그 선생님도 처음엔 저를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고 문제아라고
방관하는듯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일기장 검사를하고난후 면담을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저에게 자상하게 다가와 선생님이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애정어린 충고도 해 주시고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그때 저는학급 문예반장이였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충효일기장을 거둬 교무실로 가져가 검사를 맡아오고 매일출,결
보고를 하면서 학교에 정을 붙이도록 많은 배려를 해 주셨고
결석하는 애들 집으로 선생님과 자전거를타고 수 십리를
달려가 왜 학교에 못왔는지 확인을 해보면 어떤녀석은
저처럼 중간학교를 하는놈도있었고 집안 일이 바빠서 들에가
벼 베는 녀석도 있었고 어떤녀석은 여학생이랑 술먹고
자취방에서 홀랑벗고 자다가 들키는 민망스러운 꼴도 여러번
보았고...
문제아가 문제아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달래며 노력한끝에
모두들 학교로 돌아와서 착실한 학생이 되었고 저 역시
선생님 덕분에 역마살도 줄어들었고 보통학생으로 학업에
충실하며 지냈답니다.
선생님 고향이 전남 완도라서 그해 겨울 목포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어 학급 대표로 예전에 말썽피우던 친구와 참여했는데
목포까지 가는데 열차를 스무시간 가까이 타느라 몸살날
지경이였어요.
안동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또 갈아타고
목포까지....선생님덕분에 촌놈들 출세했지요.
비린내나는 부둣가 여관에서 하룻밤 뜬 눈으로 지새우고
덕인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정명여고
무용반에 재학중이던 선생님처제인 성송이란 여학생과
바닷가를 손잡고 거닐며 데이트를했는데 처음엔 사투리를
서로가 못 알아 들어서 얼굴만 쳐다보며 웃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게 즐겁게 지냈지요.
그게 인연이되어 오랫동안 펜팔친구로 지냈는데 그 모든것이
잘못된 길로 가려는 저를 올바른길로 인도해주신 선생님
덕분이였으니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너무나 그리워 집니다.
저보다 열살정도 많으셨으니 지금은 쉰 중반 정도 되셨으니
아직 교직에 계시는지 궁금하기도하고 만나뵐수만 있다면
만나뵙고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고말썽꾸러기였던 저 두아들의
애비가 되어 잘살고 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강 영준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참 스승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였으면 저는 이세상에 여태껏 존재하지도
않았을거고 살아있었던들 뒷골목 헤매는 건달이였겠지요...
선생님! 어디에 계시던지 건강하세요.
저 선생님께 야구 방망이로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땐
야속하더니만 복도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눈물을 감추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훔쳐본후 반성도 많이했었고 울기도 했지요.
돌아갈수없는 시절이지만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불행하게도 제가 다니던 학교는 모조리 폐교가 되어서
모교없는 설움에 마음이 아프네요....
이 미자: 섬 마을 선생님
조 미미: 선생님
시흥시 신천동 제일 정육점..
두바퀴.....그리운 선생님!!!!!
남왕진
2003.09.26
조회 108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