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선생님
최미란
2003.09.25
조회 96
숙제 공책을 펼쳐 놓고 가만히 눈감아 봅니다.
국민학교 입학에서 대학 졸업때까지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몇년전 대학 동문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안양 지역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모였지요.
소개의 시간.
어쩌구 저쩌구......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그 이름
최. 용. 선.
바로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긴가 민가 가물거려 인사를 먼저 드리지 못했는데.
벌떡 일어나 선생님께 90도 각도로 인사 드렸습니다.
"선생님~ 저 최미란이예요. 남원 용성국민학교 3학년 5반"
"어, 그래 그래. 이게 얼마만이냐?"
세월은 흘러 흘러 은사님과 함께 교단에 서서 선후배 사이로 만나다니....

선생님께 술 한잔 올리면서 그때 그 시절 이야기 한 토막을
이야기했죠.
우리 선생님이 좀 무서웠어요.
어릴적 우리 여자 아이들은 종이 인형을 오려서 노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문방구에서 산 종이 인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공책에 그려서
색칠하고 가위로 오리고 야단 법석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쉬는 시간마다 이 옷 입히고 저 가발 씌워 보고..
그러다가는 공부 시간까지 몰래....
선생님께 들켰습니다.
처음으로 매를 맞았습니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우리들 손을 떠난 그 종이인형과 종이 옷들은 교탁 위에서
천장으로 날려지고 다시 교실 바닥으로 나풀나풀...
우리는 무릎을 꿇고 그 종이 인형들을 주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그래도 전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세우느라)
그날 이후 종이 인형은 쳐다도 보지않았고
선생님도 싫어졌습니다.
3학년 남은 몇개월은 그렇게 대충 보내고 선생님도 그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어서
다시 만남!

선생님께서는 "그런 일은 기억에 없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전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말자.
잘못을 했으면 뭘 잘못했는지 그것만 짚어주자.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회초리를 들지 말자.

어떠한 경우에라도 .....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지 열여덟해.
오늘 이글을 쓰며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르친 많은 아이들은 얼마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또, 내가 기억 못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나의 무분별로 상처를 받은 아이는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

가슴이 답답합니다.
숙제가 너무 무겁습니다.
오늘 고해성사한 기분입니다.

내일은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렵니다.
가서 많이 놀아주겠습니다.
이야기 많이 들어주겠습니다.

코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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