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래방망이...
눈물! 작년에 참 많이 생산했었습니다.
시어머님이 3년 전에 중풍이 와서 6개월 입원해 계시다가
집으로 오셔서 통원치료하십니다.
그 전까지는 시어머님이 저의 모든 뒷바라지를 다 해주시고
아이들도 매일 업어주시고,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제가 일한다는 핑계로 아무 말씀 없이 알아서 해주셨지요.
물론 제 마음에 부담이 되고 죄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어머님이 몸을 가눌 수 없이 반신불수가 되시고
시아버님이 옆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간호하신지
이 달로 3년 됩니다.
그렇게 변화해 가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저희집 아이들이 셋이나 되니,
하루 벗어놓는 빨래가 엄청납니다.
아이들이 깨끗하게 입는 편이 아니라서
하루밖에 못 입히고 빨아야 합니다.
다행히 세탁기가 있어서 대부분 세탁기 빨래를 합니다.
시어머님 아프시고 한 3년 지내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심적으로 우울한 증상이 계속 되었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인데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는 일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아침이었을 것입니다.
날씨는 차갑고, 많은 빨래 세탁기 돌려 건조대에 널어 놓고
친정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친정집 동네 앞에는 냇가에 빨래터가 있어서
엄마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커다란 다라이(고무그릇)에
6남매와 부모님 빨래를 하나 가득 머리에 이고 나가셔서
빨래를 하십니다. 얼마나 많은지.... 혼자서는 들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많은 빨래를 손으로, 방망이로 두들기기도 하시고
마당에 빨랫줄에 가득 널어 말리시던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의 터진 손이 생각나고, 그 터진 손에 밭에서 일하시다
흙이 들어가 엄마 손은 검은 줄이 그물처럼 그어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우울한데, 고생한 엄마를 생각하자니, 하염없이 혼자
아침을 먹다 눈물을 주루룩 흘렸답니다.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그렇게 많은 빨래 어떻게 다 손으로 빨아서 우리 입히고 키우셨어요. 정말 엄마 생각하면서 울었어요'
엄마는 '사는 게 다 그런 거여. 그 때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너희들 다 떠나 보내놓고, 엄마 아빠 옷만 빨아. 그래도 그렇게 북적북적 새끼들 한 집에 살 때가 좋았단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네가 지금 힘들어도 새끼들 고만고만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 좋으니라. 낙으로 알고 살아라' 하십니다.
엄마의 그런 말씀으로 힘을 많이 얻었지요.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엄마는 언제나 제 삶을 먼저 사신 분처럼, 얘기해 주십니다.
지금도 빨래는 날마다 넘쳐납니다. 그것을 행복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널고 마른 빨래 개어 서랍에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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