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자( 아내의 외박)
김향미
2003.10.16
조회 49
저는 남편에게 진짜 화가 났었습니다.
제가 그때 임신 5개월 중이었는데..
맛있는 왕햄버거를 사오라고 꼭 부탁을 했는데요.
남편이 사온 것이 뭔줄 아세요?
왕드롭프스!

저는 하루 종일 그 왕햄버거 먹을 생각으로 밥을 굶었습니다.
겨우 가라앉은 입덧이 고맙기도 했고 또 여러가지 먹고 싶은 것들을 목록으로 적어서
부탁을 하려고 남편에게 읽어줬더니 남편 왈!
"왕햄버거 사다 줄께!"
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던 것이므로 저는 잔뜩 기대를 했는데..

어떻게 왕드롭프스를 사 올 수가!!!!

저는 막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오히려 화를 내는 것 아닙니까?
"뭐..그리 땍땍 거려? 왕햄버거 살려고 하니까 정반대길로 돌아가야 하잖아..그래서 왕드롭프스를 산 것이고...그냥 사주는데로 먹지..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구 그래? 오늘 축구 하지? 가만..몇 번 채널이더라?"
하며 티비 리모콘을 들고 이리 저리 눌러대느라 정신 없는데..

저는 울컥했습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었는데..왕드롭프스로 배를 채울 수 있겠어요?
화도 났고 배고 고파서 지갑 하나 딸랑 들고 뛰쳐나왔습니다,
남편은 축구에 빠져서 제가 나가는 지도 모르더라구요 딱 한번만 저를 붙잡아줬어도 그렇게 막 나가진 않았을텐데..
택시를 타고 일단 왕햄버거 사는 것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배터지게 먹구..
영화를 봤지요.
그 영화 제목이 아마 인디펜던스 데이였을 것입니다.
마치고 나기 11시!
그냥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나 임신 한 사람인데..
왕드롭프스를 먹으라고?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데..내가 먹자고 하는 것 아니라구..하며 난 그 길로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는데 자꾸 약 같은 것 가지고 들어가면 안돼요!
라고 하는데..아마 제가 자살이라도 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나봐요!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외박을 하고 이른 새벽의 시간에 멀뚱하게 눈이 떠져서 되게 심심해진 저는 그 시각에 그냥 지갑 들고 나와서 집으로 택시 타고 갔습니다.

남편은 거실에서 잤는지.
팅팅 부은 얼굴을 한채 저를 맞아주면서 화악 안는데..
"어디 갔었어? 내 얼마나 찾은 줄 알아? 축구 다 끝나고 나니까 당신 없데? 왕햄버거 오늘 열 개 사다줄게..내 잘못했어! 싹!싹!싹!"
하며 빌어대던데..
저는 외박한 여자였으면서도 당당하게 그 싹싹비는 남편을 바라보고 꼭 약속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쪼금 미안하네요!
사실 외박한 것은 잘한 일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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