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껏 밀어봐(외박)
초여름
2003.10.17
조회 81
외박하던 시절!

그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서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들로 수 놓아져 있습니다

어스름 여름 밤이 찾아오면
우리는 약속도 하지않았는데
너도 나도 슬금슬금..

동네 앞을 지나는 1번국도 옆을
흐르는 작은 실개천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우리는 재잘댔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하던
우리는 드뎌 그 무엇을 찾아 내고야 말았습니다.
먼저 남자아이들이 웃옷을 훌훌 벗어서
양쪽 팔과 목둘레를 쓱쓱 묶어
자루를 만들었답니다.

우리는 우르르
넓은 논을 지나 저~쪽 건너마을의
과수원으로 잠입했습니다.
남자애들은 행동대원으로..
여자애들은 망보기...

사방은 개미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로 가득차 있는 가운데,
우리는 날렵, 신속하게 움직였지요.

우리 행동대원들의 발자국소리..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따는 소리..
그것이 그렇게 큰 소리였을 줄이야..
그소리는
밤공기를 가르며 천둥처럼
어두운 대지에 울려퍼지는 거였습니다.

가슴은 콩닥콩닥!
전 정말 그렇게 큰 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더라구요.
아후! 금방이라도 주인이 쫒아올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점점 쪼라들고요...
그 숨막힘은 무엇으로 표현해야할까요..

이윽고 행동대원들이 돌아오고
우리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포도대신 배를 따온 승리자들을 따라
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팔각정으로 달려가 그 포획물을 처리하였지요..

너무도 짜릿했던 밤이 휘리릭 지나가고
새벽 동이 터올무렵 우리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친구 미순이와 우리집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겁니다.
아이구나 워쩌나
궁리끝에
먼저 미순이부터 담을 넘기로 하였습니다..
영차 영차...
남자 아이들이 미순이를 들어올렸습니다.
미순이네 담은 왜그리 높은지..
좀 더 밀어봐... 쫌 더 힘껏~~~
쿵~아이구...쉿.....

다음은 내 차례...
하나, 둘, 셋....여~엉~차!
우리집 담은 그나마 좀 낮아서
쉽게 꽃밭쪽으로 월담에 성공~
회심의 미소를 띠우며,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흐이그! 이를 워쩌나..
울 아부지가 안 주무시고
곧은 자세로 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부지의 부릅뜬 눈과
아부지 옆에, 꿈에도 무서운,
매섭고 늘씬한 회초리가
사색이 되어버린 제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답니다.



신청곡: 김경호-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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