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집*
*konga
200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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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에 관한 기사


(1988. 12 월호 음악세계中 한페이지)

**비뚤어진 세상 타박하던 삐딱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뜨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1973년 세상에 나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부르면 딱 좋을 가사,
비현실적인 노랫말이 당시 심상치 않은 세상을 엿보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노래음반은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삐딱한 가사' 때문에 판매금지됐다.
이후,양병집은~~~
81년 서울 신촌의 라이브업소 '뮤직모노'를 열었다.
전인권.정태춘을 비롯해 '동서남북' 등 노래꾼들이 이곳에서
기타를 치며 그와 어울렸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데모, 걸핏하면 휴교하는 대학의 악순환. 가게 앞에 경찰차가 진을 쳐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그는 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끈질기게 음악인생을 반대하신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셨던 구전을 정리한 노래 '타박네'는
그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다.
1999년 13년만에 다시 돌아온 양병집은 지난해 호주 영주권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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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이 말하는 70년대 청년문화>
'통기타와 청바지.생맥주'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해 양병집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 포장돼왔다"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 가수로 활약했던 가수들 중
가정형편이 유복한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당시 청년문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들의 노래를 향유한 대다수의 젊은이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을 염색해 입었다"면서 청바지류가 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맥주도 마찬가지다.
값이 부담없는 막걸리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생맥주는 어쩌다 큰돈 생기면 모를까, 비싸서 잘먹지 못했어요.
대신 종로 청진옥에서 빈대떡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많이 마셨죠".
그때 막걸리는 지금처럼 쌀과 옥수수로 만든 고급스러운 맛이 아니었다.
'카바이트 막걸리'로 불렀는데
'호롱불'을 피우는 데 쓰인 '카바이트'가 들어간 것이다.
먹고나면 속을 불편하게 해 골목마다
'억억'대는 풍경을 만들어낸 '주범'이라고 설명했다.
"통기타도 '해바라기'의 이주호나 '어니언스'의 임창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잘치던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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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포크송들을 번안하여 사회현실을 풍자하는 번안곡
"소낙비"(Bob Dylan곡),
"서울하늘"(Woody Guthrie곡),
"동근이 아버지"(Bob Dylan곡),
"세마리 까마귀"(Milton Oken곡),
"무엇때문에"(양병집 작사.작곡),
"떠나지 말아요"(Bob dylan곡, 원곡名 one of cup of coffee )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알려진 "역(驛)"등을 통하여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가꿨던 양병집!

이외에도~~
"이세상 사람이",
"타박네"
"저 하늘의 구름따라'
"바람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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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그의 혜안을 느낄수 있기에
비범함이 번뜩이는 곡들을 들을수 있는 방송시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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