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꼴통이다. 그래서~~?"
꺄브
2003.11.10
조회 54

[ "나 꼴통이다. 그래서?" ]


내 동생은 시쳇말로 꼴통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그러니까 제도 교육의 테두리 안으로 그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그 꼴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나와 내 동생은 세 살 터울인데 동생이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나의 학교 생활도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12월 생(生)이라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몸도 눈에 띄게 작았던 동생은
가끔 오줌을 쌌고, 그 때마다 나는 동생 반으로 불려가 꾸중을 들었다.
학년말이 될 때까지도 동생은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그래서 또 언니인 나는 동생 반으로 불려가 혼이 났다.
동생이 글도 못 읽는데 언니는 뭐했느냐고.
그 일은 내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아마도 그 일이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모범생의 모습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리라.

내가 오줌을 쌌어? 내가 한글을 모르는 거야?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내가 혼이 나야하지? 너 때문에 내가 왜?
집에 오면 나는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공부! 공부!”를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 꼴통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기는커녕,
둘을 가르치면 이전에 배운 하나마저도 까먹는 것이었다.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던지 소리도 참 많이 질렀다.
오죽했으면 편도선이 다 부었을까!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집에 와서는 내게, 동생은 매일 매일 혼이 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공부에는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꼴통도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동생은 상고를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 책가방을 메고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 꺼이꺼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왜 우냐? 학교 가기 싫으니까 이제는 별별 수를 다 쓰는구나,
얼른 일어나서 학교 안 가?
큰 언니는 회사 출근하다 말고 들어와 소리 소리를 질렀고,
나는 동생의 등을 때리며 닦달을 했고,
엄마는 동생 옆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만 내쉬었다.

“언니들은 몰라!
학교 가서 하루 종일 매만 맞다가 오는 게 어떤 건지!
이젠 더 못 맞겠어!
수학시간엔 수학 못해서 매 맞고, 부기 시간에 부기 못 풀어서 매 맞고,
1교시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맞아봐.
누군 뭐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거야?
나도 매 맞기 싫어.
맞는 거 무섭고, 억울하고, 아파서 나도 공부 잘 하고 싶단 말야!
근데 안 돼!안 되는 걸 어쩌란 말야?
내 다리 보여? 눈 있으면 내 허벅지 좀 보란 말야!”

더 이상은 학교에 갈 수 없다면서 날뛰다 걷어올린 동생의 허벅지는 처참했다.
영어 시험 못 봐서 책상 위로 올라가 대걸레 자루로 허벅지를 맞았다는데 살이 다 터져 있었다.
종아리는 종아리대로, 엉덩이는 엉덩이대로 성한 곳이 없었다.

“에이, 병신 같은 년!”

차마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언니와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학교를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벌써 오래 전부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막내의 학교 생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다른 아이들을 두드려 패거나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내 동생은, 이 꼴통은
매일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나고 맞고 또 혼나고 벌받고…. 그러다 어느 날, 저도 문득 무서워졌던 거겠지....
도대체 언제까지?

막내에게, 공부를 못하는 꼴통에게 학교는 무엇이었나?
그 곳에서 내 동생이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쉬운 것도 못 풀다니...
너는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냐?
남이 다 외우는 단어, 남이 다 푸는 수학문제를 혼자 못 풀 때, 그 때마다 동생을 몰아세우고 벌을 주던 학교에서
동생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야.
나 같은 꼴통이 뭘 할 수 있겠어….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 그곳에서 동생은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2류로 몰아붙이는 사회에 굴복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 같은 꼴통, 2류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5일 오전, 전북 남원에서 수능시험을 보던 여고생이 1교시 종료 후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1교시 언어영역시험이 끝난 오전 10시40분쯤, 18층 계단 창문에서 40m 아래 주차장으로 몸을 던졌다고 하는데
18층,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지상은 또 얼마나 아득하고 두려웠을까?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200여명의 학생이 성적비관과 스트레스로 자살을 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왜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혹여, 학교와 사회가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주입해온 생각,
어차피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그들을 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몰아붙인 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동생은 말한다.

“뭐? 언니 소설 읽어보라고? 차라리, 죽으라고 그래라.
나는 글이라면 만화책만 봐도 머리에 쥐가 나.
그래도 언니 첫 책은 내 방에 한 권 꽂아놨어.
왜냐고? 바퀴벌레 잡을 때는 딱이거든.”
책이라면 만화책만 봐도 머리에 쥐가 나는 꼴통,
이 꼴통이 바로 내 동생이다.
그러나, 나는 “나! 꼴통이다! 그래서?”라고 말하게 된
내 동생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내 동생이 자신감을 되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도 교육권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막내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좌중을 즐겁게 하는 뛰어난 입심과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으면 제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려주는 따뜻한 성격을 가진 막내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도 금방 친구가 되는 아이인데,
사회에 나와서는 내 동생만의 이 특별한 능력으로 동생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런데도 동생은 학창시절 내내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자포자기하며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다고까지 생각해야 했다.
단지,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단지 공부를 못 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 아이들...
남아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거세당한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구제불능의 인간인가?
멀쩡한 아이들을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몰아 세우고 있는 현행
교육제도야말로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구제불능은 아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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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닷컴 칼럼中에서)



해마다 치르는 허점투성이 수능제도..
단 하루의 시험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판가름짓는 잣대 ...
우리의 건강한 아이들이 치루어내야 하는 각박한 현실이
그네들의 꿈과 희망을 다 앗아가는건 아닌지..ㅜ.ㅜ
안타까운 현실을 탓해보며
하루 빨리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길
희망해 봅니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신청과 더불어 듣고픈 곡 올립니다.
조장혁/아직은 사랑할때
안치환/사랑하게 되면
박강성/광화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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