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던 무렵이니 1973년 말이거나 1974년 초 정도였나 봅니다.
제 위로 언니가 둘, 저는 노래가사처럼 세째딸이었는데 바로 한 살 터울로 남동생이 태어나는 통에 돌을 갓 넘기고 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학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해를 친정에 맡겼다가 데려오신 데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을까요. 좀처럼 아이들을 시장에 데려가시지 않는 어머니께선 저를 데리고 집을 나서셨지요.
20여분을 걸어서 시장 귀퉁이에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찬 바람이 함께 해서 사람들은 흡사 비를 만난 듯 가게 처마 밑으로, 자주 들러 단골인 가게 속으로 몸을 감추었지요.
엄마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뒤따르던 어린 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눈처럼 흰 백발에 등이 휘신 할머니 한 분이 맨바닥에 앉아계셨지요. 말린 고사리며 마늘 같은 것 몇 가지를 바구니에 담아 팔고 있는 행상하시는 할머니였지요.
대충 손으로 뜬 듯한 얼멍얼멍한 낡은 목도리로 머리와 목을 둘둘 감고,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싸주던 누런 종이 한 장만을 깔고 앉으신 그 할머니가 왜 그리도 가슴 아프게 보이던지요...
"이보시요. 이것 좀 보실라요."
가지고 나온 말린 나물 몇 가지를 팔기 위해 이따금씩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는 할머니의 가녀린 목소리는 입에서 나오기가 바쁘게 바람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엄마의 단골 가게로 눈바람을 피해 들어섰을 때 엄마에게 저 할머니는 왜 추운데 저러고 계시는지를 물었습니다
"나이들어 가진 것 없고 의지할 데 없으면 저리 되는 법이다."
"...."
아무 말 없이 그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제게 엄마는 한 마디를 더하셨지요.
"니도 이제 학교에 가야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엄마는 딸이라고 학교 덜 보내고 그리는 안 헐텐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못 배운 사람은 세상에서 헐 일이 없는 것이여."
7년동안 외손녀를 길러주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던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그 행상 할머니처럼 나이들어 거리에 앉아있던 모습이 상상되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고향은 눈이 흔치 않았던 곳입니다. 어쩌다 눈이 와도 싸리눈처럼 잠깐 흩뿌리다 말곤 했으니까요.
그 날의 눈은 어쩌면 첫 눈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펑펑 쏟아지던 눈 속에서 어린 마음에 충격적으로 다가온 그 할머니와 단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눈을 떠올리면 기억납니다.
어머니께선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낮게 드리운 잿빛 하늘을 보니 새삼 그리워집니다.
이번 주에는 저를 키워주신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찾아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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