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초 시골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상경하는 무리중 한분이 아빠였습니다.
제가 4살 때 저희 가족도 시골에서 친척들이 모여 살았던 부평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 온 첫 날 친척들이 모두모여 이삿짐을 정리하고 무척 분주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제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온 식구가 저를 찾기 위해 난리가 났습니다.
저를 찾는 엄마한테 어느 할머니가 “계집애요, 사내예요?”
여자아이는 밑으로 가고, 남자아이는 위로 간다고 하시길래
엄마는 어느 쪽이 위고 아래인지 무작정 아래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한참을 가니까 밭고랑에서 쉬를 하고 있던 꼬질꼬질한 여자아이가 엄마를 보더니 앙앙 울더랍니다. 엄마는 정신이 없으셔서 저를 보고도 엄마 새끼인줄 몰랐답니다. 제가 먼저 엄마를 알아보고 울어서 내 새끼구나 하셨답니다.
인천에 올라온 신고식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연탄가스를 맡고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살려고 나간 아이를 데려다가 죽이는구나.”하시면서 아빠가 우셨다고 합니다.
연탄가스엔 암모니아가스가 좋다고 해서
아빠와 고모부,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의식이 없는 저를 안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갔다 밤새 그렇게 해서 저를 살리셨답니다.
지금까지 친척들 모이시면 이야기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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