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내게 보이신 나의 길은?
채성옥
2003.11.25
조회 77
어제는 친정아빠가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병원에 혼자 가실 수 있다고 장담하시는 아빠가 걱정이 돼
아이들 등교 시키고 부지런히 병원을 찾았다.
아빠의 검진 차례가 되었는데도 혼자 가시지 못하는 아빠를 안내해드렸더니 왜 왔냐고 하시면서도 안심하는 모습으로 수술실로 들어 가셨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뭉클함에 아빠생각을 많이 하며 하루를 보냈다.

15년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년도 되지않아 아빠의 60세 생신상을 정성스레 차린 우리들에게 아빠 친구분들은 생신상보다 장가를 보내드려야 한다는 말에 화를 내며 매일 아침 친정으로 출근하여 걸려오는 전화를 내가 먼저 받으며 아빠를 감시(?)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그 일을 후회한 적도 없었는데 요즘, 홀로 계신 아빠에게 함께 하는 어울림이 없는 외로움의 흔적을 하나 둘 발견하곤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된다.

육신의 부모님은 우리가 처음 만나는 가장 강한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한다. 아직 우리의 자아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일때의 경험과 사건, 느낌은 성격형성의 근본을 이루게 되어 우리가 평생 쓰고 다니는 안경이 된다는 것이다. 삶을 구부러지게 만드는 마음의 안경을 벗기 위해서 부모님께 받은 영향을 살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내겐 일란성쌍둥이 언니가 있다.
지금은 겉보기에도 많이 다르지만 어렸을땐 생김새나 행동이 거의 똑같아 우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나와 언니에게 말을 시켜보면 "네."하는 대답소리만 들어도 언니와 나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백일해에 걸려 절대로 살지 못할거라는 진단을 받아 엄마 아빠 애를 태우고, 젖이 모자라 우유를 먹일라치면 혀로 우유병을 밀어대며 발꿈치를 방바닥에 치며 뱅글뱅글돌며 울어댔고 외출하려면 언니는 신발을 가져오는데 난 포대기를 가져와 엄마 등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동생이 셋이나 생길때까지 아빠 무릎에 앉아 식사하며 아빠 뒤만 따라다닌 생각이 난다.
쉰을 코앞에 둔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남편을 부르는줄 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하교길, 골목어귀에서부터 <아빠~~>라고 부르며 뛰어오는 내게 남들이 흉본다며 꾸중하신 적이 있지만 무조건 아빠를 따르고 좋아하며 어리광부리는 내가 죽지 않고 산 것이 엄마와 아빠에겐 그냥 기쁨이었나보다.

아빠, 엄마 말도 잘 듣지 않고 버릇도 없고 언니보다 공부도 잘 못했지만 남편을 만나 결혼한 일,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 입덧도 하지 않고 큰 진통도 잘 참아 낸 일은 부모님께 가장 크게 한 효도로 병원에 함께 가신 엄마는 잘 참는 내가 하도 이상해 집에 돌아와 몸살을 크게 앓으시기도 했다.

그렇게 미성숙된 내가 결혼 후 좀 부족하고 잘못했을때라도 남편은 척척 알아서 처리해주며 늘 잘 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을 한다고 내 멋대로 교구를 들여놓고 인테리어를 하며 일을 저지르곤 들통이 나 울어버리면 "어린이집은 돈 버는 일이 아니니 네 소신껏 대 해라"하며 뒷처리는 남편이 다 해주곤 했다.

올 해 2003년도엔 종교적인 바른 자세를 확립하는 해로 만들 결심을 하며 스스로 약속한 예배, 기도에 힘을 쓰며 깨닫게 되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내 자부심을 손상시키고 내 잘못에 대해 책임을 돌리는 행위란 생각이 들지라도 부모님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한없이 큰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지만 아빠와 엄마는 나를 왜 이리 약하게 키우셨을까 하는 섭섭함이 앞섰다.

무조건 받으려고만 하고 어리광으로 나의 잘못을 엎으려는 행위를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얼마나 놀랐는지....

올 추석날, 엄마의 기일을 보내며 그동안 아빠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한 내가 아빠를 잘 모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가족회의를 했는데 남편과 아이들은 나만 아빠에게 잔소리 하지않고 고분고분 대답하고 반찬 잘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이제 당신을 의탁하자니 내가 마음에 안드시는지 언니하고 살고 싶다고 하신다. 언니에겐 맏딸이므로 엄하게 키워야한다고 정도 주지않고 바르고 강한 것만 바라시더니...


수술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가신다는 아빠를 억지로 우리집에 모시고 와 저녁을 드리며 아빠는 너무 조용하게 살아 병이 생긴것이니까 가장 시끄러운 우리집에서 사셔야한다고 했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갖고 있는 부모님께 대한 섭섭함은 이제라도 스스로 강해지고 담대해져야 하는 나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약하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내게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 아빠께 내가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 드리며 잘 모시고 싶은 생각에 어젯밤 잠을 쉬 들 수 없었다.

이제 나는 안다.
마흔이 넘어서여 겪는 나의 첫번째 어려움은 아빠께 의지하듯 하늘을 의지하며 감사하며 기다림을 가르치기 위한 뜻임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념으로 인켈 오디오를 사주시며
매달 레코드판 한장씩은 나보구 사라하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음악 신청합니다.

*** 김경호 --- 아버지
*** 산울림 --- 회상
*** 김민기 ---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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