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갖고 지었던 이름을 ...
채성옥
2003.12.03
조회 91
시집와 홀 시어머님께 받은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답니다.
이제는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 란 말을 이해하며어머님 마음을 헤아릴 마음의 여유도 생겨 '무조건 착하게 순종하면 되겠지' 하던 내 어리석음을 반성하지만 그땐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갖자마자 옥편을 펴 이름을 지었답니다.
돌림이 가운데 <相> 자가 들어가야 한다고 해 相爀(상혁:서로서로 빛나라)이라 이름을 지어 놓고 반드시 아들을 낳아 며느리에게 어떻게 해 주는지를 보여주리라 마음 먹었답니다.

뱃 속의 아이에게 날마다 <상혁>이라 부르며 일기도 쓰고 노래도 불러주고 이야기도 했지요.
그런데 딸을 낳았습니다.
그 허망함이란....

어머님은 내게와는 달리 손녀를 얼마나 끔찍히 예뻐하시는지...
어머님은 남들에겐 없는 손녀를 갖으신 것 처럼 좋아하시며
교회의 교우들에게 아이 이름짓는데 경품을 걸고 공모를 하셨답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드셨는지 옥편을 펴 들고 연구(?)하여
智慧(지혜)라고 지으시고 당신이 지으신 이름이 제일 마음이 드신다며 그대로 호적에 올리셨답니다.
그 당시 지혜란 이름이 얼마나 흔했는지...
150여명 모이는 작은 교회에서도 이, 아, 김,서, 박, 조씨의 지혜가 있었답니다.
가끔씩 지혜는 흔한 제 이름에 불평을 하지만 할머님이 지어주셨다는 말에 반박도 못한답니다.

둘째도 딸을 낳았습니다. 상혁이란 이름 사용하지 못함보다, 이젠 해산의 고통은 겪지 않으리란 기쁨에 서운함 대신 큰 아이와 같은 딸이니 키우기도 좋겠다는 생각에 그저 좋기만 했지요. <지>자나, <혜>자 돌림으로 인혜란 이름으로 정했지만 그 이름보담 바꿔서 부르는 혜인이가 좀 더 세련되게 들려 내 멋대로 혜인이란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부르기 어려운 이름을 지었다고 야단하셨지만 우리가 자꾸 불러주어 익숙해지면 된다고 우겼지요.(그냥, 속으로만 우겼지요)

어떤 분이 끝말잇기 하냐며 지혜 →혜인 →인철 →철모라고 지으면 되겠다고 하시며 앞으로 아들 둘만 더 낳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농담이셨겠지만 다음해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이름은 <상혁>이가 되었구요.

가끔씩 우리는 상혁이를 인철이라 부르며 재밌게 웃곤 한답니다.
철모가 생기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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