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이 지루한 까까머리,까만 교복을 언제 면하냐면서.
그속에 우리의 청춘은 흘렀다.
세월을 보낸 지금,
이제 그날들은 언뜻언뜻 기억에만 남아 있다.
그런데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학창시절은
아주 떠나지 않고 추억으로 돌아오고,
때로는 그날을 다시 디디고 싶다는
바보같은 원(願)도 일으킨다.
옛 인연을 찾아주는 TV프로그램,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영구히 젊은 모습으로 각인됏던 은사,
고교시절 친구가 백발이 성성해
다시 만나는 그 순간만은 모두가
그 옛날의 대지를 디디고 선다.
부끄럼도 없이 옛 별명이 튀어나오고,
이마가 휑해 더 늙어보이는 제자가
은사 앞에 넙죽 큰 절을 올린다.
우리 인생에 학창시절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감동이 만들어 질건가.
학창시절.
그 안에는 우리의 지금을 이루는
모든 것의 발원이 있다.
꿈, 사랑, 감사, 우정, 열망...,
그 어느 것 하나 닿지 않는 게 있는가.
어머니 다음가는 요람!
때문에 우리는 그날을 잊을 수 없는가 보다...
[유년]
선생님 구령에 맞춰
처음으로 '앞으로 나란히'를 해보고,
시골아이들은 타박타박 흙길을 걸어 학교엘 갔다.
판자를 이어붙인 초라한 교사(校舍),
그래도 동심은 즐거웠고,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간 아이는
동생을 업고 학교에 나와 배움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온동네 잔치가 되어
어머니,할머니까지 하루를 즐겼던
운동회도 해마다 열렸다.
그속에서 우리의 유년은 알알이 여물어 갔다.
[사춘기]
'배워야 산다'는 건
당대를 관통하는 구호이자 믿음이었다.
천막교실에서도 향학의 꿈은 타올랐고,
또 한 축으로는 '산업보국'이라는 국가적 명제아래
거의 전 학생이 사회진출을 위한
필수 기능으로 주산을 익혔다.
그런 역동성은 체육을 통해서도 잘 드러났다.
영양이 부실하고 체격은 작았지만,
숨이 턱에 닿아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었다.
한 행사에서 허리숙여 상을 받고 있는 단정한 교복의 모범생,
사진 속의 주인공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졸업]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우리는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옅은 칵키색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의 교련복.
뙤약볕 운동장에서 남자 고교생은 목총(木銃),
여고생은 응급법을 익히는 교련(敎鍊) 학습을 받아야 했고,
어린 나이에 각종 시국행사에도 동원되어야 했다.
그렇게 고교시절을 보낸 우리는
어머니의 기도를 삼키며 대학입시를 치렀고,
눈물과 밀가루 세례속에 교복을 벗었다.
그것은 우리가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대학]
대학생이 많지 않았던 시절.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 자체가 선망이었고,
그곳은 확실히 별세계였다.
축제의 낭만을알고,장발과 음악다방을 누렸으며,
여대의 메이퀸 선발은 사회의 뉴스가 되기도 했다.
50년대,
지금은 낯선 흰 저고리,까만 치마의 여대생과
송판을 이어붙인 가설 강당 졸업풍경에서
시작된 현대적 대학문화.
그러나 군사문화에 휘둘리고
그에 대항하는 아픈 지성을 품어야 했던 것도
전세대 대학인의 경험이었다.
으레의 풍경이었던 데모와 휴강공고,
우리는 그 갈등의 캠퍼스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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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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