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두바퀴숙제
채성옥
2003.12.26
조회 81
행복이나 불행이 본시 마음먹기에 달린거라 어려운상황이라도 크게 비관하고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것도 내게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며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란 기대를 하곤 사는 편이다.

특별히 기쁘고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지난 11월부터 친정아빠를 모시고 살게 된 일이
2003년도 나의 베스트에 뽑힐만 하다.

5남매중에서도 가장 아빠의 사랑과 보호를 많이 받고 자라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말도, 애교도, 투정도,엄살도 가장 많고
버릇 또한 가장 없어 아빠를 무서워한적이 없었다.
야단맞은 짓을 했을땐 엄마가 야단 치지도 못하게
미리 걱정하며 앓아 눕곤 해 아빠에겐 애교많고 싹싹한 딸,
엄마에겐 얄미운 딸로 자랐다.

지난 멸 달 동안 혼자 계신 아빠가 눈(백내장) 수술을 하신 후
치료기간동안만 우리집에 계신다는걸 혼자 사시는 것보다 시끄러운 우리집이 아빠에겐 좋은 안식처라고 우겨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젠 내 애교나 엄살이나 투정을 받아줄 아빠가 아니고
대신 끊임없이 수발을 해 드려야 되었다.
옛날엔 말씀도 그리 많지 않으셨는데...
큰 불 켠다고, 문 열고 다닌다고, 마당 쓸지 않는다고, 식사 빨리 안한다고, 버리는게 너무 많다고...
하루종일 우리 식구들의 행동에 잔소리와 꾸지람을 하셨다.
언니한테 사정 이야기를 하면 언니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 뭔 그런 일로 야단이냐" 는 핀잔만 할 뿐...
남편은 남편대로 " 네가 좀 참아라. 아빠가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서 그런다"하고...
처음엔 당황스럽고 괜한 짓을 했나 싶을만큼 후회가 되었다.

난 잘 못 한 일을 봤을땐 그냥 봐주지 못하고 꼭 지적하고 고쳐야만 하는 성미여서 아빠의 잔소리에 꼬박꼬박 대꾸하며 우리집의 습관에 아빠가 적응하시는 편이 낫다는 걸 강조했다.
이제 아빠와 산 지 두달이 되어간다.
아빠의 잔소리, 나의 버릇없는 대꾸도 좀 줄어들었다.
우리집의 잘못된 습관도 고치기도 하고, 아빠의 편견도 줄어든 것 같다.
아이들에게 등교, 하교 인사도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뭐든 할아버지가 주시는 것은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무조건 받으라고 했다.
버릴것이 있어도 아빠 앞에서느 귀히 다루고 아빠 안보실때
분리수거함에 넣는다.

2003년도 내게 가장 잊지 못할 기억에 남을 일은
이렇게 좌충우돌 아빠와의 시집살이 적응살이이다.

이제 아빠와 우리 식구와 잘 살 날들만 있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2004년도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아빠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우리 아이들도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감사하게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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