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 통학버스에서 생긴 일
이형숙
2004.02.20
조회 54
저는 교복자율화의 거의 마지막 세대입니다.
제가 고3이 되었을때 1학년으로 입학한 후배들부터 교복을 입기시작했지요.
저는 그때 좀 노는 학생이어서 당시에 유행하던 옷차림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어요. 그때 한창 인기있던 옷 중에 '소세지 바지'라고 있었는데 소세지처럼 허리와 아랫단에만 고무가 들어가고 나머지 바지통은 헐렁하게 디자인된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그 소세지 바지들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한 건
아이보리 색의 바지였어요.
그 날도 저는 소세지 바지를 입고 책이라곤 겨우 한 권 정도 들어가 있는 헐렁한 가방을 메고 통학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침 그날 버스에는 윗동네 부대를 다니는 방위들이 야간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지 잔뜩 타고 있었습니다.
방위들은 모두 뒷자리에 몰려 앉아있었고 저는 마침 그 앞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지요.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방위들 사이에서 소근소근 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리는 겁니다.
"야...니가 이야기 해."
"난 못하겠어. 니가 이야기 해."
"니가 하라니까..."
버스를 둘러보니 아무래도 방위들이 이야기를 하라고 찔러대는 이유가 저 때문인것 같더군요.
그때 저는 고2였지만 방위들도 대부분 저보다 두 세살 많았을 뿐이고 그리고 그때 저는 또래들에 비해 좀 어른티가 났거든요.
속으로 약간 우쭐대는 기분을 느끼며 저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앞에 다 와서 거만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지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걸었을때 맨 뒷 창문이 열리고
방위 한 명이 얼굴을 내밀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학생!! 바지에 고추장 묻었어!!"
아이보리색 소세지 바지의 종아리 부분에 정말 한숟갈 분량의 고추장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한 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싶었습니다.
학교까지 마구 달려왔지만 귓전에서는 방위들의 웃음소리가 가시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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