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날과 나의 회혼례
이재호
2004.05.18
조회 101
부부의날
가정의달에 ?
부부의 날이라 ?
그런것이 꼭 필요한것 인지?

요즘 신세대 에겐 필요로 한것인가 가 보다 ?

결혼식 주례사 에서 단골 메뉴 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어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흰 머리를 검게 염색을 하느라 열을 올린다

할멈 머리는 아들 과 며는리 아니면 미장원 에서

나의 염색 전속은 며느리 이다
가끔 딸 이 오면
아니면 할멈 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염색을 한다

40대 듬성 듬성 이던 새치가 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50 대 갑자가 백발로 서리를 맞앗다

그때 부터 염색은 시작 되였는데 ......
그런데 요즘 할멈이 염색 하는 것을 볼때면 마음이 아파 온다

할멈 역시 어쩌다 내 머리 염색을 할려 치면 측은 한지 눈물을 훔친다

우리 부부는 조혼을 하였다 이유는 삼대 독자 의 집안 에 둘째로 태여나
형은 고등 학교 2 학년 6.25전쟁중에 결혼 장교 로 임관 될 것을 알고 부모님은 씨리도 밭으려는 지 일찍 결혼을 시키 시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15년만 더 산다면 회혼례를 맞이 할수 있다


회혼례(回婚禮)
회혼례 란 뜻은 결혼 의 60 주년 결혼식을 한후 결혼 의 회갑을 말함이다

회혼례의 조건은
제일첯째가 조강 지처 이어야 하고

두 양주(夫婦) 가 건강 하게 생존 하여야 하며
자식 들이 모두 건강 하게 살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알고 있으나

어디 결혼 60 주년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 결혼 60 주년을 15 년여 앞에 놓고
우리 여보 도 아직은 건재 하고

자식 오 남매 모두 건강 하게 사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는 이 회 혼례 까지 산다고 가정 하면
꼭 회혼례 잔치를 거행 할 것 이다

요즘 같이 결혼 도 이혼도 흔하게 하는 세상에
본 보기를 보이기 위하여 서라도
자식 들에게 푸짐하게 잔치도 하고
구식 결혼을 하여 웨딩 드레스 도 입혀 보지 못 한 것
한 을 풀어
회혼례 때는 신식 으로 결혼식을 하고 싶어서 이다

아직 까지 자식들 뒷 바라지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그때 못가본 신혼 여행을
기회에 제주도 라도 다녀올 꿈에 부풀어 있다

車 에는 요란한 결혼 장식과 차 뒷 꽁 무니 에는 강통 도 주렁 주렁 달고
신나게 거리 를 달려

공항 까지 가고 도 싶은데.......
그때 까지 살아 있을찌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결혼 하여 이제것 해로 하고 있는 비결을 공개 한다면

누군가 조금만 참고 양보 함 인데

그몫은 모두 내 차지 였다

19 살 철없는 나이에 막내 딸 이 시집 와서
시집살이 십여년 에 그것 도 부모가 반대 하는 결혼 이었으니
상상만 하여도 끔찍 하여 그때를 생각 하기도 싫다

그러나 나의 결혼 관은 확고 하여 어느 여자든 결혼하면
그 여자를 위하고
내 가 양보 하며 자식 들에게 부모의정 이라는 것이
이런 것 이다

라고 보여 주며 살겠다고
두 주먹을 쥐고 나 스스로 맹세 하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버지 의 방탕한 두집 살림에 조강 지처인
어머니 의 고통과
아버지 가 있어도 과부 의 자식 처럼 자라났기 때문 이다

결혼 식을 물한그릇 떠놓고 구식으로 치룬건 차남 이란
어른 들의 사고 방식의 굴례 에서 차남 인
나 에게는 재산 분배도 없었다...

부모의 반대 하는 결혼 식 이어서 초라
한 결혼 식을 치루 어야 했지만
내 의지는 궅게 내 아내 와 자식 들을
현재 까지 호ㅢ 호식 시키고 출가 시켜 가며
우리 부부는 45여년 단란 하게 살아 가고 있다

직업상 여자들(간호사) 들에 싸여 생활 하다 보니 아내의 생떼 나 오해가
있을 때 마다

나는 양보 하며
내 죄
내 탓 이 로 소이다 하고
위기를 극복 하였다

나를 테스트 하는건지는 모르지만 말끗 마다 이유 없이 이혼 하자고 농담 인
지 진담 인지 모르지만 40 대 후반 까지 입 버릇 처럼 하는 아내,

과연 이 여자 와 백년 해로 할수 있을까 ?
하는 의구 심에 시달리며
진심을 몰라 불안 하게 하였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

정말 입 버릇 처럼 하든 이혼 이란 말이 실제로 하자고 대드는데

정말 이혼 하자는것 인지 ?

위기를 탈출 하기 위하여

나는
해외 취업을 하기로 결심 하고 곧 바로 실천에
옴겨 1987 년 중동 건설 의무실장 으로 출국을 하였다

난 그해 비행기를 타고 열사 의 나라로 날아가 근무에 열을 올리며

자식들에 그리움과 몇 십년간의 부부의 정을
깊이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정리 할수 있는 계기가 되였다

첫 휴가 때 아내는 내가 잘못 하였다고 울며 말하기를

해외에 만은 나가지 말아 달라는
애절한 손을 뿌리 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건강에 무지하고 불쌍한
해외 기능공 의 건강을 돌보려 비행
기로 25 시간을 타고 열사 의 나라 로 다시 날아 같다

그러게 5년 이란 쓰라린 이별 은
우리 부부 의 결혼 생활에 불신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신뢰를 회복 할수 게기가 되였고
이혼의 위기를 넘길수 있었다

가슴에 뭍어 두었던 못 다한 이야기를 편지로
자식 들의 마음 도 솔직히 아버지 에 대하여 불만 과 사랑을표현 하여
부모와 자식
부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고

가족 들은 나에 존재 함 의 소중함을....

나는 가족 의 귀중 함도

서로를 절실 깨닭 았다 생각 이 들고

가족들이
나를 간절히 원 하였다라고 생각 되었을 때 귀국을 하였다

귀국 후에도
지방 병원으로 주말 부부로 권태기 와 가정 이 소중 함과 결합의 조건를
살피면서....,

그후 서울로 직장을 옮겨 주말 부부 도 모두 청산 하고
완전히 정상 적인 꿈 같은 신혼 기분 으로
부부 생활 가정 생활을 정상 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병원 정년 퇴직 후

이제는손녀 들을 양육 하며 이세 가 아닌 삼세 들을 자식 위 한 삶과

닥쳐올 우리 부부 의 은혼식 에 이어 회혼례 까지맞이 하여 정말 검은 머
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 가는 좋은 본보기로

행복한 결혼
행복한 부부 라는 것에
이글 이 도움이 되였으면 한다.

***** 행복한 부부 생활 유지법 *****

서로의 인격을 존중 하고

서로을 절대로 신뢰 하여야 하며

의견이 충돌 할땐 누구 하나가 먼저 양보 하여야 하며

충돌후 최단 시일내에 화회 하여야 하며

자기만의 과거나 비밀은 죽을때 까지 말하지
말것 이며
상대방 의견을 겸허히 수용 하고 그 뜻을 음미 하고 수정 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사랑 이며
무조건 용서 인것 이다

용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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