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6.11 김현주D.J 와 딸)
할머니 와 우리 어머니 사이는 고부간 이라기 보다
친정 어머니 요
호랑이 홀, 시어머니 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2개월 遺腹子(유복자)로 태여나 큰 아버지 와 한집에서 자라 났다고
한다
큰 조부 는 이조 말엽 선달 이라는 벼슬을 하여
엄한 양반 집으로 행세 하였던 모양 이다
애비 없는 자식소리를 듣지 않게 큰 아버지 로 부터 남다른 훈육 으로 길들
여진 아버지!
그러나 할머니 에게는
애지 중지 한 하나밖에 없는혈육 이고 자식 이었음을 두말 할것 도 없었
을 것이다
어머니16 살 아버지18 살 에 겹 사돈 을맺어
한약방 하는 외조부 의 딸 부자집
막내 딸을 며느리로 맞아 드fut나 보다
외로우니 까,
번족한 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나
일제가 나라를 식민지로 점거 하자
외아들 인 외삼촌 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버리는
원인 으로 외조부 게서는 화병을 얻어 급사를 하시고 말았다고 한다
외 삼촌 은 재산을 정리 하여 아예 일본 으로 가서
일본 여자 와 결혼 하여 외사촌 들을 생산 하는
세월에...
외톨이가 된 어머니는 유일하게 의지 할곳 은 할머니 와 아버지 였으나
맞 형과 누나 을 출산후 우연한 기회에 砂金(사금) 을 캐는 회사 의 일본 사장
의 신임을 얻어 출세 가도 를 달려 가는 데
일본 출장 만주 출장 등 으로 .......
신여성 과 바람이 나고 말았다
그후 의 고생은 영화 旅路 의 원작품 같은 여인의 아픔 으로 고생을 하시 어는
것을 어린눈으로 보아 왔다
작은 어머니 와 아버지 있는 대청 으러 겸상을 차려 바치는 어머니를 보고 자
랏 으니까,
할머니를 친 어머니
할머니는 친 딸 같이 두분은 바람난 자식과 남편 을 일편 단심 기다 리며
고생. 고생 하시며 우리들을 기르시었다
돈도 불어 오고 또 작은 부인을 얻어 보란듯 이
부자 행세를 하였다
해방 과 더불어
거지가 꼴로 나타난 외삼촌 은 우리말도 제대로 못 하시는 외숙모 와 외사촌들을,
어린 나이 에 낮선 異國人(이국인) 보듯 하며 외사촌들 과 정을 부쳐야 하였
다
외사촌 형 이름이 마사오. 라고 하였나?
청주 가 고향인 외삼촌은 선산에 모신 외조부 의 산소 에 거지꼴, 불효자로 나
타나 외조부모 산소 에 엎 드려 호곡을 하였으나 무슨 소용 있었을까 ?
어머니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거지꼴이된 오라버니를 도우는데 눈치를 보아야
하였고,
아버지 는 큰집, 작은 집 으로 재산을 분배 하여
큰집은 할머니 어머니 형 누나 와 나 그리고 남동생 하나
작은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세컨드) 내 위로 형 . 내밑으로 여동생, 으로 각
각 살림을 따로 나고 재산 분배를 하여 각자 의 삶 이 시작 되였다
해방 이 지난 몇해 후의 이야기 이다
우리 형제들 은 고등 학교 를 나오고 대학을 모두 마치고 재산은 고스란히 현상
유지를 하는 대신
아버지는 재산 을 모두 날려 버리고 아들만 육칠명 더 낳고 거지꼴이 되였
다
잘먹고 잘쓰고 한 결과 이엿다
우리 큰집은 악착 같이 농사 짖고 저축 하여 현상 유지를 하여 오며
지아비를 빼앗긴 어머니는 할머니를 친 어머니 모시듯 지극 정성을 다 하였
는데
다른 동네 이웃 사람 들은 끼니를 못 먹여 부앙 이 나고 하는 형편 이었어도
할머니 식사에는 언제나 쌀밥 이었다
밥을 지을때 쌀 을 보리밥 위에 안치고 밥을 한후
쌀밥만을 골라 퍼 놓고 나머지 식구 들은 쌀반 보리밥의 혼합 밥을 먹어야 하였
다.....
할머니 상엔 언제나 겨란 찜.
아니면 겨란 후라이를....
또,광천 조개젖 이나 새우젓 . 조기. 고등어 중 하나씩은 단골로 올라 오
곤 하였다
쇠고기 국 은 생일 이나 제사 때 에 만 먹을수 있었고.....
유난히도 비린 생선을 좋아 하든
어린 나는 초등 학교 4,5.6 학년 시절 어린 동생을 뒤로 하고 수저 와 젓갈이
게란 찜이나 생선 쪽으로 먼저 가면
냉정하신 어머니는
할머니 가
나누어 주시거든 먹어야지!
하시고 먹는 것을 제지 하시 었다
또 겸상 시에는 수저도 꼭 할머니가 좌정 하시고 수저를 들으 신 후에야 우
리들은 수저를 들고 밥을 먹 어야 하였다
식사중 소리를 내내고 먹으면 福(복) 이 나간다고 야단을 치시 었고,
그 겨란 찜 이나 생선을 못 먹게 하여 밥 투정을 부릴랴 치면 그날은 그것
으로 밥숫갈을 놓아야 하고 밥 그릇 빼앗겨 그날은 굶어야 하는 엄한 벌 로
감히 할머니 의 반찬에 눈독을 드리지 못 하게 하였다
어린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그래서 지금도 겨란 에 새우젓 으로 간을 하고 애호박을 채로 썰어 넣고 겨
란찜을 한 것 이 최고 의 반찬 이고 한때도 빠지지 않고 계란 후라이는 단골
메뉴 이다
젓갈류 또한 어리굴 젖은 시도 때도 없이 단골을 지정 하여 직송 으로 광
천 김 과 함게 토굴 새우젓 과 어리굴젓. 조개젖을 탁배로 부쳐다 떨어 지지
않게 할멈 이 배려를 한다
할멈도 시집 살이10여년 에 그 시할머니 시어머니 정성 과 내 식성을 눈 으로
몸소 경험 하여 왔고
장가 간 후에도 식탁 에서 구박 을 밭는 것 을 보아 왔으며 또 어린 손자들 에
게 까지 심 하게 차별 하시는 것을 체험 하였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 놈들도 손주 들 까지 겨란 후라이 와 겨란 찜을 모두 너
무나 도 좋아들 한다
그리고 조개젖 , 생선 좋아 하는 것 까지도....
아마 !
조물주 의 탓 으로 돌려 야 겠지요...
그래서 어릴적 나는 아버지가 일곱명 이어야 한다고반항 을 하였다
1 아버지 는 쌀가게
2. 아버지는 고기집
3. 아버지는 생선집
4. 아버지는 옷가게
5. 아버지는 신발가게
6. 아버지는 과자 점
7.아버지는 학용품 가게
신청곡
정수라
아버지 의 의자
추신= 유영재 님.오늘은 제 신청곡 저바리지 마시기를....
용인 에서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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