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TV방송의 시작과 끝이 되었던 애국가의 배경화면에서
황홀하게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면서, 저 바위에 앉아 풍경에 취해 숨을 거둬도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움이 사 묻힌 금강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먼저 고인이 되신 정주영회장님과, 정몽헌 회장님의 명복을 가슴 깊이 빌어 본다.
하늘이 내려주신 참으로 대단하신 그분들 덕분에 금강산을 다녀오는 영광을 누렸다.
통해야를 기획하신 CBS 기독교 방송에 감사드리고, 기업이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는 포스코 건설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측 땅으로 들어섰는데,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이런 인사말도 없이 무표정한 두명의 군인들이 우리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내렸다.
곳곳에 사진촬영을 감시하는 인간 CCTV가 로봇인형처럼 서 있었다.
이곳이 분명 북측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전쟁 때 치열했던 곳이라 나무가 자라지 않은 민둥산의 봉우리가 우리를 맞았다.
북한의 마을, 길, 집의 모양은 중국의 농촌 마을과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습한 기온을 느끼게 했다. 건물들이 칙칙한 색깔이고, 지붕이며, 벽이며, 문의 모양은 똑같았다. 사람들의 입은 옷도 밝은 색깔이 없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페인트로 그들의 마을을 색칠하고 싶다.
밝은 색을 보면 생활의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이다.
금강산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많이 보았을 텐데,
그들은 쭉 늘어선 버스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북한 출입국 관리소에 도착하니, 인공기 뱃지를 단 북측 군인인지?
심사원의 굳은 표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였다.
숙소인 해금강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와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온정리로 갔다.
금강산 관광의 시작이요, 끝인 온정리에 왔을 때는 정몽헌 회장의 추모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왔다. 가슴이 뭉클했다.
현대아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
쭉 늘어선 줄로 식권을 사서 뷔페식 식사를 했다.
내 나라가 아닌 곳을 여행하면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촌스러움인지 괴롭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중국에서처럼 쫄쫄 굶는 여행은 되지 않을런지 걱정스럽다.
1인당 30불의 거금을 주고 1시간 30분가량의 모란봉 교예단 공연을 관람했다.
서커스를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해서 교예단이라 불리운다.
아낌없는 박수갈채와 감탄사가 끊일지 않았다.
악단의 연주와 고난도의 묘기는 인간의 몸이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묘기에 얼마나 마음을 조리며 봤는지 온몸이 아팠다.
공연이 끝나고 연기자들이 ‘다시만나요’ 라고 노래할 때 그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나 또한 공연을 보면서나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주루루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동포애일까?
분단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통일이여 어서오라고 가슴이 뜨거웠다.
둘째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맞치고, 금강산 관광을 위해 온정리에 모였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날씨가 맑게 게였다.
조장의 말이 착한 사람들이 와서 날씨도 좋다고 한다.
모두들 자기가 와서 그렇다고 한다. 기분좋게 산행을 시작했다.
구룡폭포는 3시간, 상팔담까진 4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다. 평소 운동량이 적어서 인지,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르시는데, 나는 무척이나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 남편은 보이질 않았다. 여행을 즐기라고 했는데, 금강산의 절경은 보지도 않고 모두가 바쁘게 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 멋진 소나무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구름이 끼여있는 높은 산봉우리는 내동생 윤희가 봤다면 한폭의 동양화로 붓을 그어대지 않았을까?
모란각, 양지대, 상록수, 금강문, 옥류동을 지나 구룡폭포 관폭정에 도착했다.
남편과 엄마, 아빠는 상팔담으로 오르셨는지 보이질 않았다.
딸아이와의 사진을 음료수를 파는 예쁘고 친절한 북측 아가씨에게 부탁했다.
남남북녀 라는 말이 진리이다. 높이 150미터 폭이 4미터의 구룡폭포가 사진에 나오려면
인물이 한쪽으로 기운다고 설명하는 그 목소리,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선하다.
신아가 금강문부터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는데 벌금 때문에 참고 참아서 구룡폭포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4불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4,800원. 남자는 1불인데 여자는 4불일까?
그리고 안내원에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금강문 있는 곳의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1불, 돈보다도 그곳까지 참고 왔다는 것이 더 억울했다. 내려오는 길에 확인을 했다. 안내 푯말이 잘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금강산 관광을 간다면 꼭 말해 주고 싶다.
모란각에서 1인당 10불하는 북한식 비빕밥을 먹었다. 물컵을 신아가 깨뜨렸는데 깨진 컵을 치워줄 생각은 하지 않고, 컵값 1불만 받아갔다. 남측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점심을 먹고 삼일포로 향하려고 했는데, 버스를 놓쳤다. 큰할머니, 외할머니 탓이 아니라, 나 때문이였다. 모란각으로 내려오는 길은 무진장 지루하고 다리도 아프고 힘들어서 입맛도 잃었다.
통해야 관람을 위해 금강산 온천장에서 피로를 풀기로 했다.
온천을 하면서 이곳이 북측이란 말인가? 황홀한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다.
온천장을 다시 찾고 싶은 욕심에서라도 금강산에 다시 오고 싶었다.
저녁식사는 노인들은 밥이 힘이라고 억지로 식당으로 미뤄놓고 나는 우유 하나로 떼웠다.
남북이 하나되기를 염원하는 통해야 공연은 감동적 이였다.
무대에 설치된 장비들, 여러대의 카메라를 보면서 대단한 CBS, 준비한 분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본다.
아쉬운 것은 북측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같이한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선 분명 통일을 기원하는 간절함이 가득했으리라 믿는다.
세쨋날, 만물상 관광이 끝나면 여행은 끝이다. 무척이나 아쉬웠다.
주차장에서 중간까지 밖에 가지 못했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어렵다는 말에 시도도 못했다.
사실 구룡연에서의 흔들다리도 무척이나 무서웠다.
돌아오는 길 여러대의 버스가 불을 켜고 달리고 있는 모습은 벅찬 감동으로 남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금강산을 찾고 싶다.
처음이라 어설프고, 준비가 부족한 여행이였다.
다시 간다면 알찬 배낭을 메고 갈수 있을 것 같고, 쫒기지 않고 즐기는 여행이 되리라 생각된다.
금강산이 어떠했냐고 물으면,
한살이라도 젊었을때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큰어머니, 외할머니, 엄마, 아빠와 같이 하면서 많은 짜증을 부렸다.
내 사랑하는 분들이 많이 늙었다는 것이 서글퍼서..
짜증을 부리는 내가 짜증이 나서 심술이 났다.
더 젊었을때 더 보여드리지 못하고 대접하지 못한것이 후회스럽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관광을 끝내고, 남측 땅을 밟으니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억수로 내리는 빗길을 달려오면서 같이했던 모든 분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딸 신아의 신청곡 성시경의 그날이후로
저는 김용우씨의 목소리로 통일이어라, 영차!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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