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닌 참 활동적인 분이셨습니다.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에 친분관계도 무척 두터우셨지요.
덕분에, 그다지 넓지 않은 저희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 온 동네 어른들이 모두 모인듯한 어수선한 분위기, 그게 너무나 싫었서 매번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와서는 시장골목을 몇바퀴씩 배회하다 들어가곤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일찍 귀가해서 조용히 숙제하고 TV도 보고 싶은데, 일주일에 4, 5일은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집.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우리 엄만 통장도, 반장도 아닌데 왜 동네 궂은일은 다 도맡아 하는 거야. 왜 꼭 우리집에서만 판을 벌이냐구'
불만은 쌓이고 쌓여 엄마와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입학에 실패하게 되었고 소식을 접한 그날밤, 실의에 빠진 저는 엄마께 마구 대들었어요.
'딴사람들은 수험생이 있으면 숨도 크게 못 쉰다는데 우린 맨날 사람들로 시끄러우니 대체 공부를 하란 소리야 말란 소리야. 대학 떨어진 거 다 엄마 때문이니까 책임져'
쉴새없이 퍼부어대는 딸의 원망을 엄마는 그냥 뒤돌아서 듣고만
계시더군요.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집 형편이 많이 어려웠단 사실을.
남는 음식이며 적은 수고비라도 살림에 보태자싶어 동네의 자질구레한 모임을 일부러 맡으셨다는 걸.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저는 정말 속없는 철부지 딸이었습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낸지 14년이 흘렀어요.
쑥스러운 마음에 그때 그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지 못하고 넘겨버린 것이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애창곡~
글쎄, 저희 엄만 평소에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일이 거의 없으셔서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으신가 보다 생각할 정도였어요.
근데 언제인가, 꼭 노래를 해야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이 노랠 부르시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노래에 빠져 행복해하시던 모습. 그런 표정은 좀체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이후로도 가끔, 아주 가끔씩 '찔레꽃'에 빠져계신 엄마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어디선가 부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엄마 보고싶습니다...
신청곡 :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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