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서미숙
2004.10.20
조회 99

면(面)단위에 한개밖에 없었던 국민학교
제가 살던 면에는 6개의 리(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거리가 가장 먼 우리 동네가 6리였어요.

교통편이 없었던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통학거리는 왕복 2시간이었어요.

등교길엔 지각하지 않으려 빠른 걸음으로 걸었기에 한시간였지만
학교가 파한 하교길은 2-3시간은 기본이었지요.

산 넘고 물 건너고 논과 밭뚜렁 사이로 다녀야만 했던 우리들은
가는길 오늘길이 놀이터였어요.

봄엔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 산에
머루랑 다래 개암까지 우리의 간식거리였고
진달래잎은 많이 따 먹은 친구는 비실비실 취하기도 하고..

여름엔 밭에 널려있던 수박이랑 참외 토마토 오이 가지 ..
모두모두가 우리의 주전부리였어요.
먹는것도 질릴때쯤 우리는 길따라 흐르는 개울물에 가방이랑
옷을 벗어버리곤 멱감고 발장구치고 신나게 놀곤 했지요.

가을엔 누렇게 익어 고개숙인 벼들 사이로 메뚜기 잡아 가마솥에
튀겨먹기도 하고 길옆의 주인모르게 몰래 뽑아먹는 무맛은
종일토록 뛰어다니느라 생긴 갈증을 풀어 주는대는 최고였어요
동네 입구 과수원의 사과랑 배도 전부 우리것이었어요.

놀이터가 없던 그 시절
산과 들 논과 밭은 우리의 영원한 놀이터였고 자연학습장이었죠

해가 뉘엿뉘엿 져서야 돌아오는 우리를 반기는건
엄마의 성난 목소리와 부지깽이었어요.
바쁜 농사철에 거들지 않고 쏘다닌다는 엄마의 잔소리는 잠자리에 들어서야 조용해지곤 하지요.

그때의 친구들아
잘들 살고 있지? 보고싶다.

박상규 친구야 친구
임성훈 시골길
정종숙 달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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