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어머니의 애창곡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직원들과 재미있는 여행을 저의 짧은 언어로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004년 10월 15일 금요일
부회장님의 과음하지 말라는 신신당부의 애정 어린 격려사로 우리 일행 11명은 16시30분 사무실을 출발하였습니다.
총무팀장님의 핸드폰 문자 “♡ 훌훌 털어 버리고 재충전 만땅 기원♡“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우리는 11번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면세점을 돌아 보았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우동팀, 피자팀으로 요기를 하고, 댁에 계신 어부인과 예쁜 토끼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둘러봐도 눈에 차는 건 꽤 값나가는 명품들 뿐, 다리품만 팔았습니다.
아시아나 OZ353 20시출발, 하노이 노바이 국제공항 22시 40분 도착 2시간 40분의 비행이라....(이런 무식한)
베트남과 시차는 2시간 이였던 것입니다.
기대하던 기내식과 레드와인의 기운으로 잠을 취하려 했는데, 좁고 불편한 자리로 4시간의 비행에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쾌쾌한 냄새, 자욱한 안개가 우리를 맞았습니다. 가이드 김문섭씨와 만나 25인승 버스에 타고 홍강 위의 다리를 지나 숙소인 대우호텔로 이동하였습니다.
가이드가 베트남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딱 2가지라고 했습니다.
물과 오토바이. 물은 석회가 섞여 있어 생수를 꼭 먹어야 하는데 상표에 따라 3$에서 5$로 물 인심이 야박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거리에 오토바이가 많으니 길을 건널 때는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뛰거나, 멈추지 말고 걷던 속도 그대로 하면 알아서 피해간다고, 그래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이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만, 오토바이는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하노이의 밤거리의 범상치 않은 불빛들은 일행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다섯 개의 별을 가진 대우호텔의 덩치는 어두운 밤이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로비의 웅장함은 한국인의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어디에 계시는지? 김우중 할아버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노이의 첫날밤을 맞았습니다.
2004년 10월 16일 토요일
호텔식으로 조식이 끝난후 조금 늦게 목적지인 닌빈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메뚜기 떼라고 표현해도 될 셀 수 없는 오토바이 행렬에 우리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도로의 차량속에서 가끔 오토바이를 발견하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의 무리속에서 차를 가끔 보게 된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걸어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헬멧을 쓴 사람은 볼 수 없으며, 자외선이 너무 강해 모자와 복면을 한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엄청난 무질서 속에 질서가 보이고, 뚱뚱한 사람은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이라고 하니 우리 일행의 남성분들은 모두 베트남에 남아도 행복하실 듯 합니다.
마티즈 택시, 누비라, 프라이드, 현대마크의 버스와 공사 차량들,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삼성프라자, 강화운수, 금강산 관광, 송정사랑병원 한글이 쓰여진 버스를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고차들이 이곳에 온 것을 보고 중고차 매매상 사장님들께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폐차직전의 차량은 절대로 수출하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차로 2시간 30분 소요되는 땀꼽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현지식이라고 하지만 배추김치, 열무김치, 상추쌈, 고추장 한국관광객들이 많아 한국사람 입맛에 맞춰서 그런지 먹을 만 했습니다.
베트남의 전통모자인 ‘롱’을 쓰고 대나무배에 2명씩 노 젖는 현지인 2명과 수로를 타고 주위의 자연경관인 호아루 사원, 기암괴석, 수중동굴을 감상하였습니다.
같이 배를 탄 현지인이 “꼬레아? 꼬레아?” 우리가 코리아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꼬레아 넘버 원!”
베트남전쟁 때 미국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월남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가이드에게 들었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여유속에 미소를 잊지 않는 베트남인들이 관광객들로 인해 망가질까 염려스러웠고, 코리아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배신감으로 남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언니, 누나, 만두, 김치”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배를 탄 우리를 찍는 파파라치들, 배안에서 자신들이 만든 수제품을 파는데, 그 물건들은 보잘 것 없었지만 한국인의 인정으로 샀습니다.
배기사 팁은 US$ 1씩, 마음 같아선 10$을 주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2시간의 긴 시간을 생각하면 인정상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많이 주면 그분들의 정서가 깨어질까 1$로 정해진 규칙 아닌 규칙을 지켰습니다.
파파라치가 배에서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인화지의 사진이 아쉬울 때가 있는데 10장에 만원하는 것을 오천원으로 계산을 끝내고 감사의 마음으로 버스로 올랐습니다.
하노이 귀환, 저녁을 먹기 전 수상인형극을 보러 갔습니다.
물이 고인 무대가 있는 곳에서 극이 행하여집니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는 모두 8명, 무대 뒤에서 긴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으로 나무로 조각된 인형을 조종합니다.
5명이 베트남 전통악기로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우리나라 창(昌)처럼 가수가 꼭두각시의 행동에 맞춰서 노래를 합니다.
극의 주제는 작물을 수확하는 얘기, 고기를 잡는 얘기, 온갖 축제에 대한 얘기들로 베트남인들의 일상생활을 그렸습니다. 잠깐 잠깐의 위트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공연 이였습니다.
저녁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으로 한 공기 후딱 비웠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과일가게에 들렀습니다. 과일가게를 통째로 살 분위기였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몇 보따리의 과일을 보니까 가족들이 생각이 나서 내 나라로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가지고 오지 못하니 배속에 넣고 갈 욕심으로 1년 먹을 양만큼 많이 먹었습니다.
둘째 날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갖고 곤한 잠을 청했습니다.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4시간 버스로 이동한다는 일정을 듣고 겁부터 먹었습니다.
일행 중 누구는 머리만 대면 엔진소리인지? 인간의 소리인지? 지루한 시간을 즐겁게 했습니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동안 딱 2명 눈뜨고 있었다는 따끔한 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장사는 없으니 이해합니다.
베트남은 휴게소가 없습니다. 2시간 30분을 달려와 도자기 공장에 잠깐 쉬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작업은 수작업 이였습니다.
‘인간 복사기’라고 표현할 만큼 똑같은 그림을 쓱쓱 잘도 그려냈습니다..
“꼬레아?”코리아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넘버원, 꼬레아 넘버 원”
“깜-원~~”고맙다는 베트남 언어로 활짝 답했습니다.
옆에 앉아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습니다.
조그마한 도자기에 KOREA 37 KIM YUN GYEONG라고 흔적을 남기고 왔습니다.
우리는 1시간 30분정도 더 달려 목적지인 하롱베이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유네스코지정의 세계적인 자연경관의 하롱베이는 분명 바다라고 들었는데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3000여개의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파도가 섬들에 부딪히고 부딪혀 고요하다고 합니다.
저 고요한 물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다금바리 (쩝~~)도 살고 있을 겁니다.
해적선 같은 큰 목조선을 우리 팀만 탔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감히 생각 못할 일입니다. 억만장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선상에서 만들어진 해산물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모나지 않은 많은 섬들과 어우러진 배들의 모습은 잘 그려진 동양화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섬내의 석회동굴에서 하늘문, 용형석, 용좌, 선녀목욕탕 등을 보았고, 전쟁이 있었던 곳이라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황홀한 느낌으로 하늘로 닿는 길을 보았습니다.
섬 주변에 물 위에서 생활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변 물고기를 잡아 관광객을게 팔며 생활을 합니다.
문화적인 혜택과 의료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이 왜 안 좋은지... 이것이 교만함일까 두렵습니다.
저울을 속이는 상술로 흥정이 되지 않아 그리도 기대하던 다금바리는 먹지 못했습니다.
처음 보는 형광 빛의 갑오징어를 꼭 먹어 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제 마음에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며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먹었던 마음과 다르게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기로 하고 15일의 하롱베이 관광을 하루로 마치고 하노이로 돌아 왔습니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교통수단 이였던 ‘시클로’를 한 시간 동안 타고 시내를 구경했습니다.
인도에 조그만 식탁과 목욕탕 의자를 놓고 쌀국수, 술, 고기를 먹는 많은 사람들, 맞벌이가 일상화되어 식사를 외식으로 해결하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소비가 굉장하고 활기가 넘치는 젊음의 하노이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일렬로 주차돼 있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공장에 온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주차료 부과는 당근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제 사회주의 티를 벗고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가고 있음을 시내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당한 매연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저녁을 먹을 때였습니다.
목이 아파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낮거리에서는 복면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밤거리는 복면을 한 사람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외선에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복면을 하지만 매연 때문에는 하지 않는 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들은 매연속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메뉴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노이 노바이 국제공항 출발 02시20분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06시3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의 마무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역시!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신청곡 이선희씨의 아름다운 강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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