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님, 안녕하시죠?...^^
개편 후론 처음 인사 드립니다.
저희 엄마 아버지께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금실 좋은 부부셨습니다.
그렇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두 분이 싸우시는 장면을 목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노래 때문이었지요.
어디 내놓아도 노래 잘하시고 놀기 좋아하시어 동네에서 아주머니들로부터 "오라버니 부대"를 동원하며 인기를 한몸에 받으시며 젊게 사시던 아버지는 누구 집 잔치날 이라던가, 동네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일류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초대 되어 가셨지요.
신명나는 장구 소리에 맞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시며 동네 아줌마들사이에서 "오빠.. 오라버니 멋쟁이.."
소리를 들으시며 입이 한바가지 벌어지시는 아버지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엄마가 어느날 부터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노래라 하면 멀리 뚝 떨어져 산 넘어 불구경으로만 여기시던 엄마가 어쩐일로 노래를 배우겠다며 자처하셨는지, 우리 식구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어허, 내 참 오래살고 볼일이네 그려... 마누라가 노래를 다 부르겄다꼬?.. 고마 때리치야라!"
아버지는 일찌기 엄마의 노래실력을 훤히 다 아시는 듯, 엄마를 우리들 앞에 세워 놓고서 무안을 주셨습니다.
"와요?.. 내는 노래 못 하라는 법이라도 있소?.. 배우면 안되는기 어댔노. 내가 노래를 잘 부르모 여편네들이 얼쩡대도 못할끼라.."
그날 밤부터 엄마는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서 우리가 있는 아랫방으로 건너오셔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가르켜 달라며 조르셨지요.
아무리 가르쳐도 엄마의 발성 목소리는 처음에서 끝까지 한 음으로 시작해 한 음으로 마치며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은 언니가 세수대야를 들고 들어와 엄마 머리에 뒤집어씌우더니 큰 소리를 질러보라하였고,
그제서야 엄마는 체면이고 뭐고 내팽기치고, 큰 소리를 내었습니다.
밤마다 딸들한테 개인 교습을 받은 엄마는 낮에도 밭일 나가실땐 꼭 바께스(들통)을 들고 나가셔서 밭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잠깐씩 들통을 뒤집어 쓰고, 아아.. 발성 연습도 하고 누가 들을새라 밭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큰 소리를 질러대며 연습을 하셨습니다.
드디어 엄마가 노래를 부를 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친척들간의 성묘계가 있던 날,
아버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장구를 어깨에 매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장구채로 쿵짝쿵짝 장단을 맞추고,
동네 아주머니들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스타오라버니' 를 외치며 아버지를 빙 둘러싸고 신명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데...
저만치서 술 심부름만 하고 계시던 엄마가 술상을 걷어차시며 달려들어 갑자기 아주머니들 틈사이를 비집고 아버지 앞에 우뚝 다가서시더니 장구채를 휙, 낚아채어 마이크 처럼 붙잡고서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에 푹 되취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행여나 날 찾아 왔다가~~ 못 보고 가 더라도....옛정에..매이지 말고~~....
사랑이란 그런 거~ 생각이야 나겠지만~~.... 먼 훗날.. 그때는.."
엄마의 노래소리를 처음 들은 동네아줌마들은 입이 쩍 벌어지더니, 슬금슬금 아버지 뒤로 물러나며 기가 푹 죽어버렸지요.
평소 수줍음 많고 목소리도 모기 소리처럼 가늘던 엄마가 어디서 그런 용기와 베짱이 나오셨는지 온동네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동안 노래 배우려고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을지를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도 그날은 다른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오직 엄마 옆에서만 장구를 치고 신명을 돋워주셨습니다.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음치 이시던 우리엄마가 '오라버니 부대' 아줌마 팬들을 누르고 결국은 당신만의 남자이신, 아버지를 차지하셨다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그후로 어머니는 김미성의 먼훗날을 애창곡으로 지금껏 계속 부르고 계십니다.
이 노래를 다시 친정어머니께 들려드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고 싶어집니다.
어머니의 애창곡 <* 김미성~~~ 먼 훗날 *>
시작이 이렇게 되거든요.
< 행여나 날 찾아왔다가 못보고 가더라도 옛정에 매이지 말고..... 사랑이란 그런거 생각이야 나겠지만...... 먼훗날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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