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26
아버지가 운영하던 대구 교동시장에 있는 제품 공장이 또 불이 났습니다.
이런 불은 2-3 년 마다 났고, 시장에 불이나면 어김없이 우리 공장도 불에 전소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2-3년 모아서 시내 중심가에 상가 건물을 사려고 준비해 두었다가 불이 나면 홀딱 까먹고, 하기를 여러 번 하여서 생활은 언제나 제 자리 걸음이었습니다.
불이 나자 미군 적십자 요원들이 화재를 당한 사람들에게 이불과 옷가지는 물론, 우유와 옥수수 가루 등을 서 너 포대씩 나누어주면서 끼니를 때우라고 도와주어서 생계에 많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에 돈이 없으니 작은 방을 세놓기로 하였습니다.
작은 방에는 군목 부부가 예쁜 여자 아기를 데리고 새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군목은 육군 대위 모자를 쓰고 아침에 짚 차로 출근 할 때면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더 신나는 것은 이 군목의 조카 영주가 고모 집에 놀러 오는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14살이고, 영주는 초등학교 6학년 13살이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영주는 웬일인지 늘 고모 집에서 놀려 와서 살았습니다.
나는 미군 적십자 요원들이 배급해준 옥수수 가루에 설탕을 넣고 물로 반죽해서 양은 물 컵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뚝 떼서 넣고는 연탄불 위에 얹으면 영락없이 동그란 시폰이 되어 나왔습니다.
컵 한 개로 빵을 구워 내자니 그 양이 모자라서 나와 동생이 나누어 먹기도 모자랐습니다.
거기다가
“너 빵 굽나?” 하면서 영주가 부엌을 들여다볼라치면 영주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했습니다.
영주가 빵을 조금 맛보고
“맛있다, 너 이 담에 빵 장사해도 되겠다” 하면서 새까만 눈에 빨개진 얼굴 로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러면 영주가 빨간 장미 송이같이 예뻐 보였습니다.
무엇이던지 예쁘면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것이 사람들인가 봅니다.
그래서 나는 뭔가로 영주의 관심을 끌 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빵 굽던 양은 컵에 마당에 서있는 감나무 송충이를 잡아서 돼지기름을 바른 후에 달달 복아서 내 입에 한 마리 넣고 씹으니 고소하고 파삭파삭한 게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볶아진 살찐 송충이 한 마리를 집어서 영주에게 건네주면서
먹어 봐’ 하니까,
영주는
'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거 큰일 났다. 영주가 다시는 발걸음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경질 나는 일이었습니다.
송충이를 먹는 것은 용기를 보여 주는 장난 인데, 그런 일로 삐져서 안 나타나니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즈음 감나무 송충이를 복아서 먹는 것은 우리 남자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나타내는 일이었고, 나는 영주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영주가 발걸음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전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 사모님에게
“영주가 왜 안와요?”
“왜 보고 싶니? 이 녀석아” 하며 내 볼을 잡고 흔들다가 놓았습니다.
“아니요, 뭐- 궁금 해서요” 하며 능청을 떨었습니다.
“사실은 영주가 맹장 수술을 했단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이 말은 나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아마도 영주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는 맹장염을 수술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의료사고가 많았습니다.
나는 전전긍긍 하면서 영주네 집 길가로 난 창가에서 서있기도 하고, 쓸 때 없이 영주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목소리가 들리라고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외로이] 하면서 [그 집 앞]을 노래하기도 하였지만 영주를 못 만났습니다.
거기다가 다시는 영주를 못 볼일이 생겨버렸습니다.
군목 가족도 전근으로 이사를 가고, 영주 네도 동네에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 10년 뒤에 우연히 길가에서 영주 언니를 만나서 영주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가슴 뛰는 날이었습니다.
언니와 말없이 같이 걸어가면서, '영주가 얼마나 더 예뻐졌을까? 맹장수술 뒤에 건강은 어떻게 되었으며, 말은 얼마나 더 예쁘게 할까?' 하는 것들로 머릿속이 웅- 웅- 거리며 태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집으로 가면서 영주를 찾는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싱긋싱긋 웃었습니다.
넓은 영주네 기와집 담에는 넝쿨 장미가 줄줄이 담을 감싸면서 늦여름 한 낮의 햇볕에 새 빨갛게 피어 널려 있었습니다.
아벨 벨몽은 '장미 역사 예술사전'의 서문에 이런 글을 썼답니다.
'신의 창조물 중에 완벽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인데 그것은 ‘여성과 장미!'라고 말입니다.
예쁜 미인과 장미는 둘 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고 말입니다.
10년 동안 그리워하며 만났으면 한 맺힌 그리움을 풀어야 하는 데, 그 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툇마루에 엉덩이를 나란히 하고 걸터앉아서 말없이 한참을 서로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영주의 깔깔거리던 웃음이 하나씩 꽃송이가 되어서 담장에 떨어진 넝쿨 장미 꽃 같았습니다. 여전히 영주는 넝쿨 장미꽃처럼 예뻤습니다.
말이 마려운 내가
“넝쿨 장미는 꽃도 예쁘지만, 향기가 더 좋은 것 같아”하며 영주를 쳐다보니
“넝쿨 장미? 구린내나” 하며 영주가 말했습니다.
여전히 예쁘던 영주가 한순간 거짓된 말로 나를 분노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영주네 집을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쉬워하지 않고 10여 년의 가슴앓이 하던 가시를 거기서 빼내 두고 그 길로 돌아서 왔습니다.
나는 바보스럽게도 여자의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진실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가 봅니다.
신청곡 : 여호와는나의 목자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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