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애창곡] 꼭 부탁드려요
장은화
2004.11.28
조회 73
저 어릴 적에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대충 닦으시며
"아고 우리 강아지 학교 다녀왔는가?"
하시며 저를 반겨주신 분은 어머니가 아니라 등이 굽고 흰머리가
히끗 히끗 보이시는 우리 할머니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없는 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고모와 삼촌들을
학교 보내고 또 시집 장가보내기 위해 저희들을 낳고 바로 뒤
아버지와 함께 직장 생활을
하셨고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우리 남매들을 보살피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셨답니다
그 옛날 젊은 며느리는 직장 생활을 하고 늙으신 시어머니는
힘든 집안살림을 도맡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크고
작게나마 고부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 기억 속에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말다툼을 하시는 걸 본적이 없었답니다
외려 할머니께서는 어머니께
"없는 집 큰며느리로 시집와 네가 고생이 심하구나."
"어멈아 미안하다."고 하시며 어머니께 외려 미안해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배려덕분에 어머니께서 맘 편히 직장 생활을 하실 수
있었고 또한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할머니께서는
엄마가 맘 편히 직장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언제나 완벽하고 말끔하게
집 안일을 도맡아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어린 동생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기라도 하면
할머니께서는 동생들을 눕혀놓고 자장가를 불러가며 동생들 등을
살살 긁어가며 재워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 어릴 적 직장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 살림
도맡아하시며 우리 남매들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던 할머니
그렇게 제 기억 속에 할머니는 늘 인자하시고 청결하시고
바지런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자하시고 바지런한 우리 할머니께서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후....
조금씩 이상해지시더니 급기야 제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 흔히들 말하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치매증상은 어느 날부터인지 확연하게 심해지기 시작하셨고 급기야
어느 날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할머니께서 우리는 물론 당신의 딸처럼 생각하며 아끼시던
우리 어머니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지
할머니께서는 당신 스스로 대 소변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기까지 하셨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증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어머니께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할머니를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하시며
또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시게 되었답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건강하실 때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던 고모와 작은어머니도 할머니께서 편찮으시자
저희 집 방문을 자제하시는 것 같았고 어쩌다 집에 오시는 날에도
어머니께 할머니 약값에 보태라며 약간의 돈을 쥐어주시고는
그냥 돌아서서 가실 뿐
우리 어머니 혼자 하루 종일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그 힘든 살림을 하시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때 당시 사춘기에 접어든 저로써는 예전에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은 까마득하게 잊고 그저 날 알아보지 못하고 또 하루에도
여러 번 옷에 실수를 하시는 할머니의 그런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날도 어김없이
어머니께서는 마당 한가득 쌓여있는 할머니의 옷이며 이부자리를 빨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뭐가 그리 좋으신지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이 노래를 참 흥겹게 부르시며 할머니의 똥 빨래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께 저는 다가가 "엄마 뭐가 그리 좋은데."
"엄만 할머니 똥 빨래하는 것 더럽고 싫지 않아?" 하고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할머니께서 우리 가족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데."
"그리고 할머니께서 저렇게 되도록 엄마가 신경을 쓰지 못해 엄마는
할머니께 죄송할 따름이란다."
라고 말씀하시며 다시 하시던 빨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빨래를 다 헹궈 빨래 줄에 나란히 널어놓고
어머니께서는 마루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옆에 앉으시고는 할머니께
"어머니~~~~~저 어머니 똥 빨래하는 거 하나도 안 힘들거든요."
"그러니 어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있으셔야 해요." 하며
할머니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내리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도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셨는지
아님 어머니의 수고가 안쓰러워서인지 어머니의 그런 바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답니다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돌아오던 그날
어머니께서는
"어머니 저 어머니 똥 빨래하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는데"
"그곳이 뭐 그리 좋은 곳이라고 그리도 빨리 가셨어요."
"어머니 없이 나 혼자 어찌 살라고 그리 가셨어요."
하시며 참으로 오랜 시간 목놓아 우셨답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제가 저희 아이의 기저귀를 빨다보면 가끔
그 옛날 할머니의 똥 빨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까지 불러가며
빠시던 어머니의 그 행복했던 뒷모습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 엄마의 애창곡 찔레꽃 부탁드려요 (가수는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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