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리운 목소리 너머로
최은순
2004.12.03
조회 55
영재님의 아나운서 상 받으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시 영재님은 큰 상을 받으셔도 되실 분이십니다.
늘 푸근한 목소리와 여러가지 풍부하신 재치와 달변 좋은 말씀으로 애청자들과 기독교방송에 헌신하시는 태도가 존경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팔방미인 영재님이 상을 받으실 줄 알았습니다.축하합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전남 목포였는데 어릴적에는 아버지가 항상 바다로 뱃일을 나가시곤해서 몇달에 한두번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배에서 돌아오시는 날은 양손 가득 묵직한 선물꾸러미를 안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립문을 들어서시기 전부터 언제나처럼 아버지의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었네.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가면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잊었단 말인가..' 반가운 노래소리에 달려나가 아버지 옷소매를 붙들고 늘어지면 아버지는 어린 우리들을 달랑 들어올려서 꺼칠한 턱수염을 우리들 볼에 쓱쓱 부비시며 저마다 선물 봉투를 풀어헤치셨답니다.
"옛다. 우리 순이것은 요깃다. 아버지 보고잡혔냐? 아버지도 우리 순이 보고자퍼 죽을뿐 했구먼" 커다랗고 솥뚜껑만한 아버지 의 거센 손바닥에는 앙증맞은 분홍색 원피스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집은 지리산자락의 산골이었는데 읍내와는 사뭇 먼 거리라 어디 장에도 한번 구경다니지 못하였고 돈이 없다시며 엄마는 우리들 옷 한벌 변변하게 장만해 주시지 못하셨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배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실날을 오매불망 목을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보면 아버지는 참으로 인자하신 분이셨습니다. 어김없이 엄마 선물에 우리들 선물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곧잘 사다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사다주신 꼽실꼽실한 하얀색의 레이스가 달린 분홍 원피스는 일본에서 사오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원피스를 딱 한번 입고는 장롱속에 꼭꼭 숨겨두고 국민학교 입학실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두번째로 꺼내 입고 엄마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와 시골 학교로 갔습니다.
3월 중순 입학실날은 봄이라해도 몹시도 쌀쌀한 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입학식에도 나가고 싶지가 않아 아침부터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날은 아버지가 다시 바다로 뱃일을 나가시는 날이었는데 내가 학교 입학 간 사이에 행여 아버지가 바다로 떠나시고 나면 못볼까 걱정이었습니다.
엄마는 원피스 안에다 내복을 입히고 다시 겉에다가 헌 털쉐트를 한벌 더 껴입혔지만 나는 한사코 낡은털쉐터를 벗어던지고 언피스만 입겠노라 고집을 부렸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콧수건을 단 아이들중에는 나처럼 예쁜 새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추워서 덜덜 덜면서도 나는 어금니를 꾹 다물고 연신 운동장 밖 울타리만 바라보았습니다.
엄마가 서 계신 옆에 아버지가 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 주시기를 바랬지만 그 많은 학부형들 속에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풀이 꺾여서 금새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이름표 적힌 손수건에 콧물을 닦았지 절대로 아버지가 사 주신 원피스 옷자락으로 닦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고 아버지를 향한 예절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학식을 마치고 장터를 구경하는데 누군가 내 뒤에서 내 눈을 감기는 커다랗고 거센 손바닥이 느껴졌습니다.
"순이야 누구게? 내가 누군지 알아맞춰보래" 나는 단번에 그손바닥에 아버지임을 알아챘습니다. 아버지는 내 입학식을 보고 떠나시려고 일부러 시간을 늦추신거라고 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장터의 순대국밥집으로 들어서시면서 기분좋게 노래를 또 부르셨습니다.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었네..' 아버지는 내가 순대국밥을 한그릇 다 비우는 동안 내내 이노래를 부르시면서 내 뺨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불러주던 그노래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 홍민이 부른 노래.
노래곡명은= 고향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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