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가속지기 영재님! 늘 느낌이 있는 방송 잘 듣고 있답니다.
전 저희 장모님의 애창곡을 신청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장모님께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8살때부터 남의 집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추운겨울이면 냇가에 가서 두껍게 얼어버린 얼음을 빨래 방망이로 깨서 그 고사리 같은 손을 호호거리며 빨래를 빨아야 했고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일이며 밭일이며 하루종일 하다보면 손발이 상처투성이에다가 퉁퉁 붓기가 일수 였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집이 너무도 가고 싶고 엄마가 보고싶어서 그 집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서 많이 맞기도 했답니다.
그때 저희 장모님께서는 책을 보자기에 둘둘말아 허리춤에 차고 학교로 향하는 또래의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살아가시다가 동네 어른의 소개로 장인어른을 만나 딸넷을 낳으셨지요.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미역국도 제대도 못먹고 몸도 추스리지 못한채 밭일이며 집안일이며 다 하셨다고 합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장인어른께서는 조그맣게 농사를 지으셨지만 당신땅이 없던 터라 먹고 살기도 힘들었기에 장모님께서는 저의 아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아내를 등뒤에 엎고 새마을 사업으로 남자들도 하기 힘든 콘크리트를 샆으로 펴며 도로를 놓는 일까지 하셨답니다. 정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리고 여름에는 밭일하러 또 저녁에는 식당주방의 설겆이하시러 또 겨울에는 붕어빵 장사로 정말 억척스럽게도 살으셔야 했습니다.
아내가 초등학교때 소풍을 가는데 길가에 집짓는 공사장에서 장모님께서 먼지묻은 옷을 입고 일하시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아내의 친구가 "어..너희 엄마 아니니?"하고 묻자
어린 마음에 너무도 창피한 생각이 앞선 아내는"아니 나 저아줌마 몰라."하고 말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왜그랬는지 나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후회가 된다며 아내는 가끔씩 얘기합니다.
장모님은 고생끝에 만두와 찐빵을 파는 조그마한 분식점을 여셨는데 가게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에 가게 한켠에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주무시면서 생활을 하셔야 했습니다.그렇게 공기가 탁한 곳에서 주무시며 생활을 하셔서인지 아직도 기관지가 안좋아 고생하고 계십니다.
장모님의 고생과 노력덕분에 네 딸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지금은 큰딸과 둘째딸은 출가시키고 셋째,넷째딸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의 마음의 여유가 생기신 장모님께서는 요즈음 한글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초등학교도 못나온것이 제일 한이 되신다며 나중에 손자 손녀들이 물었을때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지 하시며 무척이나 열심히 하십니다.
제가 퇴근할때 집에 전화를하면
"송서방... 글씨 큰 책으로 몇권 부탁하네.."
"네 장모님. 지난번 그책들은 다 읽으셨어요?"
"읽기는 읽었는데 모르는 글자가 너무 많아."
"오늘 집에가면 알려 드릴께요."
퇴근길 장모님과의 전화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답니다.
그런데 요즘 장모님께서 관절과 허리 디스크가 많이 안좋아지셔서 걱정입니다.
아내는 자식들인 우리가 엄마를 너무 고생시켰기 때문이라고 항상 마음아파합니다.
저희 가정이 이렇듯 행복함이 느껴지는건 숱한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어 늘 자식사랑이 한결같으신 장모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장모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장모님께서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 늘 그자리에 계셨으면 합니다.
장모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애창곡 신청합니다.
이미자(섬마을 선생님)신청합니다.
옷 단단히 입으시고 고뿔 조심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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