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애창곡>미싱돌리며 부르시던 어머니의 동백아가씨!
김민선
2004.12.12
조회 56
우리 시어머니는 사실 옆집 아줌마셨습니다.
어린 시절 한동네에 살며 저희 친정엄마와는 같은 친목계원이셨는데 제가 옆집 오빠와 결혼하는 바람에 졸지에 옆집 아줌마에서 시어머니가 되신거죠.

그러다보니 우리 시어머니의 젊은날에 대해서도 제 남편만큼 잘 아는 편입니다.
당시에 시아버지께서는 택시운전을 하셨는데 개인택시 면허를 불과 얼마 눈앞에 두고 아버님이 큰 교통사고를 내시게 되었습니다.그런데 피해자측과 원만한 합의를 보지 못해 아버님은 구속이 되셨고 그 이후 1남3녀의 부양책임을 어머니 혼자서 짊어지시게 되었습니다.

그 엄청난 현실앞에서도 어머니는 서울로 유학간 하나뿐인 아들이 행여 집 걱정에 학업에 몰두하지 못할까봐 주위사람들에게 함구령까지 내리시며 혼자 그 짐을 다 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처녀적에 큰 섬유공장에서 미싱을 돌리셨다고 합니다.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60~70년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역군이셨지만 세간에서는 그녀들을 공순이라고 비하해 불렀던 시절이 있었고 어머니 스스로도 공순이셨다고 얘기하십니다.

그 미싱돌리던 시절이 너무도 힘들어 결혼하고는 아예 미싱을 쳐다도 안보셨다지만 그 미싱으로 시장모퉁이에서 수선집을 여시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남편 옥바라지까지 훌륭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유학갔던 제 남편보다 어머니의 고생을 옆에서 지켜보아 며느리가 된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찡해 옵니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갈때면 어머니의 수선집을 들르곤 했는데 언제나 힘들게 미싱을 돌리시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구성지게 부르시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고생하셔서 지금은 1남3녀 모두 훌륭히 가르치시고 아버님은 그 때일로 개인택시는 못받으셨지만 아직도 열심히 일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십니다.하지만 어머니는 오랜 미싱일로 허리가 안좋으십니다.
그 시절 어머니가 부르시던 그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다시한번 들어보고 싶고
비록 공순이라며 자신을 비하하셨던 어머니의 그 미싱돌리던 손이야말로 너무나 자랑스럽고 훌륭한 손임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어머니! 애들 이불 그냥 시장에서 사면 되니까 미싱돌리지 마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도 당신이 기쁨으로 하시는 일인지라 그저 철없이 고맙게 받기만 합니다.

유영재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꼬옥 동백아가씨 들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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