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
김은아
2004.12.21
조회 55
내 머리카락은 곱슬 이다. 어릴 적 머리카락 싸움에서 져본 역사가 없을 정도로 두껍고 튼튼하기 까지 하다. 그뿐인가.. 그 튼실한 것들은 온 머리를 검게 뒤덮고 있다. 한 마디로 머리숱도 매우 많다. 내가 태어났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신체 부위는 역시 머리였다. 굽슬굽슬한 검은 머리가 유난히 많았다는 엄마의 말씀. 흰 피부에 그런 머리를 가진 나는 어른들 사이에서 대 인기였다고.. 그래, 어릴 때까지는 좋았다. 적어도 그 때의 머리 굵기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테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난 그때까지도 머리 스타일에 대한 별 생각 없이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 하나가 곱게 스트레이트파마를 하고 왔다. 친구의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어찌나 부럽던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졸라 기어코 스트레이트파마를 했다. 첫날은 변화된 머릿결이 좋게 느껴졌다. 그 머릿결이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머리를 감고 나니, 머리는 예전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깨를 찰랑거리던 그 머리는 어느새 부스스한 곱슬머리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난 엄마에게 징얼거렸다. 미용사는 다름 아닌, 엄마였기에.. 약국에서 스트레이트 약을 사 정성스럽게 발라준 죄 밖에 없는 우리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내 머리가 치유 불가능한 곱슬머리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은..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중학생이 되었다. 귀밑 2cm.. 검정색 단발머리.. 가뜩이나 숱 많고 곱슬인 머리는 단발이 되자 더욱 도드라졌다. 드라이를 해도, 가끔씩 미용실에 가 스트레이트를 해도.. 좀처럼 모양새를 바꾸지 않는 그 굳건함이란.. 그 기세에 나의 의지도 손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TV에서 ‘곱슬머리, 고민이십니까?’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았다. '매직스트레이트'를 전문으로 하는 미용실이 등장한 것. 온 몸의 감각을 집중하여 방송을 보던 나는.. 결국 생전처음 가보는 압구정동에서 당시 10만원이 넘는 거금을 지불하고 찰랑찰랑 매끈매끈.. 꿈에 그리던 머리를 갖게 되었다. 그 효과는 전 경험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길었다.. 거의 6개월 이상 유지되었으니.. 그때의 난 내 머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나고.. 다시 그 미용실을 갔다. 어깨 정도 길이의 머리를 하고 있었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대에 살며시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시중의 '매직스트레이트'를 하자니 가격이 싼 대신 얼마 가지 않아 도로아미타불이기 십상이었다.


대학생이 되었고.. 한두 번 ‘매직스트레이트’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웨이브만 한다. 어차피 곱슬.. 더 볶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웨이브를 하였는데, 생각 외로 잘 어울렸다. 그 이후 비싼 매직 대신 웨이브를 고수해온 ‘웨이브 고수파’가 되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온 머리에 ‘브릿지’를 넣었다. 사실.. 그 전에도 머리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그 위에 파마를 하고..‘브릿지’까지 하여 지금은 심각한 머리 손상 상태이다. 어제 미용실에 갔다. 운 좋게 ‘영양’ 무료 티켓을 얻어 오랜만에 영양분도 주고 왔다. 오늘도 미용실 언니는 한 마디 씩 하신다. “머리 차암~ 곱슬이시네요.” “어머,어머.. 머리 숱이 어쩌엄~ 이렇게 많으세요~~??” 지난 20여 년 간 다른 지역, 다른 미용실에 가도 어쩜 그렇게 하시는 말씀들은 똑같으신지.. 한 땐 상처도 받았다. 극복하러 노력도 했었다. 머리 파마 마느라 고생하시는 언니들.. 이젠 내가 먼저 한 마디 한다. “머리 숱, 너무 많죠?”


신청곡은 ‘찰리박’ ‘카사노바사랑’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흰돌마을 4단지 주공아파트 409-307 우;411-724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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