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애창곡
민수희
2005.01.03
조회 56
강원도 하고도 정선...남들은 오지라고 하는곳.. 그곳은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 저희 아버지의 제2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저희 아버지는 광부이셨지요..막장이라는 곳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 저희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깨끗한 얼굴보다도 시커먼 연탄가루로 얼굴이며, 옷이 새까만것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으니까요.
고등학교때 일로 기억됩니다.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선생님들과 함께 광부체험을 하셨다고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이런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 진짜 공부 열심히 해라.. 내가 광부체험을 다녀와서 느낀것인데 정말 너희 아버님들은 존경스럽다. 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굴속 깊은곳에 들어가셔서 석탄을 캐는것.. 그것 아무나 하는일 아니다. 정말 하루하루 목숨걸고 하시는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가슴속에서 먼가 울컥 했습니다.
철없던 그시절.. 친구들 아버지도 거이 광부이셨으니까.. 그렇게 아버지의 직업이 힘든일인줄을 몰랐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하신다니.. 가슴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딸부자집이라고 놀리시면서 여자아이들은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면 많이 가르친것이라고 주위에서 말씀하셨지만 여자들도 배워야한다면서 딸넷 대학까지 모두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학비정말 만만치 않으셨을텐데 저희 아버지 때문에 지금의 저희행복도 있는것 같습니다.그때 다치신 허리때문에 디스크수술까지 받으셨지만.. 오래서계시는것도 힘들어 하실때는 정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건강이란게 아프기시작하면 회복되기는 참 힘든것 같습니다.


힘든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면 아버지는 깨끗하게 씻으시고 이노래를 항상 흥얼거리시며 부르셨습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얼마나 이노래를 좋아하셨는지 저희 가족 모두 이노래를 그냥 스스럼없이 다 외웠으니까요.
이노래를 부르실 때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항상 옆에 끼고 같이 즐겨부르셨습니다.
지금도 가족모두 노래방에가면 단연 저희 아버지의 애창곡은 울고넘는 박달재입니다.
가족모두의 애창곡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저희아버지의 애창곡이기도한 "울고넘는 박달재"를 신청합니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