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하기전 엄마는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먼 산을 바라보시며 노래를 부르셨다.
그렇게도 맑게 그렇게도 아름답게 들렸던 엄마의 노랫소리가
오늘은 왠지 구슬프게 가슴속을 난도질하며 파고드네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우리 가정은 무법자들에게 땅이며 집이며 다 잃은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의 삶은 언제나 노래가 떠나지 않으셨다.
자주 산에 오르시며 나무들을 향해 부르셨던 노래,
옛날 백설희씨가 불렀던 ♪봄날은 간다~♪ 요즈음 리메이크로
한영애씨가 많이 부르더군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웃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들렸던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노래 잘 하시는 엄마가 부러웠고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매일 듣던 엄마의 노랫소리도 내가 결혼해서 아이둘 놓을 동안 단한번도 듣지 못한지 어언15년이란 세월이 넘었다.
그런데 내생일 그날 아침 "미역국 먹었니?" 하시며 전화로 물으시는 그 음성에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엄마한테로 달려갔다.
그리도 고우셨던 엄마의 얼굴은 세월의 한을 가득 담으신 채
푹 패인 주름들로 채워지고 여리게 여렸던 손은 지문조차 없어지셨다.
엄마는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시며 ,불고기이며,잡채이며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한 상 차려 주셨다.
결혼해 15여 년 만에 다시 엄마와 마주한 생일 상, 메어진 가슴으로 채워진 한 상 이였다.난 기쁨에 눈물을 엄마품속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곤 그날 오후에 우리모녀는 함께 산에 올라갔다.
산이라면 훨훨 올라 다니셨는데 이제는 10m올라가다 쉬시고, 20m 올라가다 쉬시고…
아! 참으로 세월은 우리 엄마를 많이 망가뜨렸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엄마는 "선물 줄까?" 하시더니 또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웃고름 씹어가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를 시작하셨다.
그러면서"생일 축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몇 곡을 더 불러 주시는데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 잠잠히 계시던 엄마는
"이젠 네 앞에서도 맘껏 울 수 있고 노래도 할수 있으니 좋구나. 노래하면 눈물이 다 들어가는 것 아니?"
하며 말씀하셨다.
"아, 그러셨구나!" 나는 이제야 아이둘 낳고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말이다.
그 오랜 세월 노래를 그렇게도 많이 부르셨던 이유를…
그리도 힘드셨던 엄마의 한과 설움의 눈물들을
어린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래로 참으셨던 것을…
철없는 우리 오 남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참고 참으며 노래로 삭이셨던 세월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날은 나도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찬송가랑 가곡이랑 생각나는 대로 모두…
그렇게도 쩌렁쩌렁 이산 저 산을 울리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이제는 가냘픈 소리되어 내 귓전만을 울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내 힘이라도 보태 드리고 싶었다.
만발한 진달래꽃이며 벗 꽃이며 길가에 작은 제비꽃들은
모녀의 산행 길에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15여 년 만에 받은 엄마의 노래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 다시 불렀다.
내 작은 가슴에 꼭꼭 채워 영원히 간직하려고…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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