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울고 불고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셨다는 어머니는 병원에서도 울보아줌마로 소문났었다고합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미친 듯이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이 의사 붙잡고 우리 아들 살려다라고 했으며
저 의사 붙잡고 우리 아들 어찌되면 그냥 안둘것이라고 으름짱도 놓았다고 하니
어머니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익히 상상이 갔습니다.
그런데도
다행스러운 일은
제가 많이 다친 것에 비하여 회복이 빨랐다는 점입니다.
끊어진 팔뚝의 뼈가 붙기만을 기다리면서 정형외과 병동의 시간은 흘러갔고
무료해진 어머니는 아버지께 부탁을 해서 라디오를 한개 갖다 달라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도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바로
침대 머리 맡에다가 그 트렌지스터를 놔두고 칙칙칙 주파수를 맞추면
구수한 목소리의 진행자가 나와서 노래를 들려주곤 했는데
어머니가 박수로 장단을 맞추면서 흥겹게 부르던 노래는 바로
<무너진 사랑탑>
이었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디 단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타아아압아~~~
하면서
정말 억울하다는 듯
발도 장단을 맞추는 우리 어머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울고 불고 우리 아들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것이라면서 병원을 시끄럽게 하던 그런 어머니가 아닌 그저 시간이 지나면 다 고쳐질 제 병임에 안심을 하신 듯
그렇게 라디오를 끼고 살듯 하신채 노래를 즐겨들으셨습니다.
정형외과 병동은
중환자가 거의없고 흔히 말하는 나이롱 환자만 그득하기에 어머니가 불러대시는 무너진 사랑탑은 병실 사람들이 거의 다 외워버릴 만큼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진 사랑탑만 불러대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음정 박자 따로 노는 자연적으로 외워버렸고
퇴원 후 회복하여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매년 두 번씩 소풍가는 날이면
저는 꼭 나가서 무너진 사랑탑을 불러
신기해하시는 선생님들로부터 앵콜 박수까지 듣곤 했답니다.
어머니 덕택으로 저는 오락부장까지 역임해보는 영광을 얻기도 했지요
우리 어머니가 즐겨부르시던 <무너진 사랑탑>
을 유가속에서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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