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이란 장편소설 책을 빌려보기 위해 도서관을 번질나게 드나들던 햇살 고운 어느 봄날,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 사나이가 내 눈에 주저없이 들어왔다. 복학생이었다.
어느덧 날씨는 쌀쌀해지고 우리의 느낌도 깊어갈 즈음에 늘 가던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오빠의 모습은 경직되어 있었다. '이 오빠가 왜그러지' 그냥 걸었다.
인적이 드문 길, 어둠이 짙어가는 그 때 갑자기 나의 손을 잡더니
"숙아, 너 진짜 오빠 좋아하지"
"응, 좋아하는데 이 손 좀 놓고 얘기해"
덜컥 겁이 났다. 손을 뿌리치고 걷는데 오른쪽 어깨에 무언가 스르르 앉는 느낌에 놀라서
"뭐야? 오빠 왜그래. 그러지마, 그냥 걸어가자"
이번에는 허리를 감싸면서
"괜찮아, 오빠 믿지?"
맥박소리가 쿵쾅쿵쾅 도망치듯 서너발 앞질러 갔다.
"잠깐만 서 봐"
걸음을 멈췄다. 날벼락이다. 귓볼에 침을 묻혔다.
"오빠 미쳤어? 완전히 바람둥이구나! 항상 이래?"
좋으면 좋은거지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서야 자기의 행동이 거칠었음을 알았는지 아무말없이 두 갈래 길로 뚜벅뚜벅 ....
일주일 쯤 지나서, 오빠를 찾아갔다. 10월 31일 저녁 여섯시에 삼겹살집에서 만나자.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는 좋은 감정이 되살아날까 싶어서. 노래도 있잖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밤을..
첫사랑이라면 첫사랑인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남들은 첫사랑에 대한 미묘한 추억이 아른거린다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과민반응이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아니었는데.....
허무한 인생인지 불쌍한 인생인지 훗날 누군가 내 주위를 맴돌때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느낌이 좋다 싶을 때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진다. 난 그 눈빛이 싫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항상 거기까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야수같은 행동만 빼면 다 좋은데 남자의 본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꽃같은 나이 이십대를 그렇게 보내놓고 보니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아깝다. 땅을 치면 뭐하랴. 지금쯤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을텐데.
친구들하고 노래방에 가면 쓰라린 이별노래 사랑노래들만 불러댔다.
"쟤 또 시작이다" 하면서 친구들은 나의 슬픈 표정을 즐겼다.
최재훈의 잊을 수 없는 너.....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 김경호의 비정 많이도 불렀었다. 지금은? 더이상 아파할 가슴이 없어서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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