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지고 첼로의 낮은 음색이 가슴 속을 깊이 파고드는 걸 보니 확실한 가을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첼로로 들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의 여운이 아직까지 커피의 잔향처럼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그때의 기억마저 아스라해져 버렸지만 시월의 어느 날,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들이 무주로 1일 나들이를 시켜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먼길 다녀오는 교사들을 염려하셔서 출발하기 전에 기도를 해 주시러 오신 담임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나서 안동을 출발해서 풍산, 김천, 영동을 거쳐서 버스는 우리를 싣고서 잘도 달렸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총무가 김밥,떡, 초코파이, 음료수가 들어있는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줘서 우리는 김밥을 먹으면서 차창 밖의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끼리끼리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가을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영동이 나왔는데 거리가 온통 빨갛게 익은 감나무가 있어서 차에서 내려서 감 하나를 따서 먹고 싶었지만 교회차를 타고 갔는데 그럴 수는 없었지요.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무주엘 도착을 하니 가을이라서 그런지 그때 시각이 4시가 채 못된 것 같았는데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 보니까 원래 이번 여행의 목적은 가을단풍을 구경하는 거였는데 덕유산에는 발도 못 디디고 먼발치로만 바라보고 다시 돌아가야 할 판이었어요.
우리를 인솔해 가신 전도사님과 두 분의 장로님께서 아쉽지만 그만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이 산에 조금이라도 올라갔다가 내려오겠다고 해서 전도사님과 몇사람이 덕유산엘 올라가고 남은 사람들은 김밥을 먹으면서 기다리는데 한 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산으로 떠난 사람들은 오질 않았습니다. 밖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 사람들은 오지 않고, 장로님들은 교사들을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전도사님까지 원망을 하셨습니다.
8시가 다 되어서 돌아온 전도사님과 교사들은 장로님에게 야단을 실컨 맞고 차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추풍령에 도착한 버스가 갑자기 서 버렸습니다. 바람이 부는 추풍령은 10월인데도 추웠습니다. 기사 분이 차를 고쳐보겠다고 애를 썼지만 30 분이 지나도 차는 고쳐지질 않았고, 우리는 추위로 오돌오돌 떨어야만 했습니다.빨리 차를 고쳐서 출발을 해도 12시 전에는 도착이 힘들 것 같았습니다.
다급해진 전도사님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워서 공중전화 있는 곳으로 가셔서 부목사님에게 버스가 고장이 났다는 소식을 전했고, 부목사님께서는 교사들의 집에 일일이 전화를 해서 사정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날 1시간이 넘어서 겨우 버스를 고쳐서 전속력으로 달려서 안동으로 갔는데 그날 저녁 저는 교회에서 가까운 아는 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감기가 걸려서 누워있는데 동생이 걱정이 되어서 찾아왔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가자 엄마가 하는 말씀이 "어딜 가려거든 제발 집에 알리지 말고 살짝 다녀와라 너 아버지 너 때문에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다."
비록 그때는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이젠 그때의 일도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네요. 이젠 어디사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보고싶네요.
신청곡: 아 옛날이여(이선희)
[가을], 떠날 때는 말 없이~
이동영
200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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