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텔레비
김한규
2007.10.06
조회 39
내 어린 마음을 한없이 뛰게 했던 늦 가을날의 저녁한 때
새끼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버지 손에 들려있어야 할 연탄대신에
텔레비가 들려있었다.
나와 동생은 좋아서 죽는데 엄마는 무슨 돈으로 이딴 걸 사왔냐고
성화고 아버지는 월남 갔다온 친구 놈 집에서 거저다시피 얻어온 것
이라면서 돈 내놓으라고 안 할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큰소리치셨다.
텔레비에 정신을 빼긴 우리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
가는지도 모르고 텔레비를 보는데 암만 봐도 사람은 안 비치고
연신 치직거리며 말소리도 사람도 안 나왔다.
할수없이 밥드시다 말고 아버지는 지붕으로 올라가셨다.
아버지는 지붕 위에서 연신 '잘 나오냐'를 외치고 나는 방안에서
들창문으로 머리를 빼고 '아직 안 나오는데예'라며 텔레비의 상태를 보고하고 똑같은 물음과 똑같은 대답이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지만
우리집 문짝 텔레비는 '지지직' 거리며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면 텔레비만 죽어가는 소리를 내는게 아니라 골목에서 놀다가
아버지 손에 들린 텔레비를 보고 저녁도 안 먹고 쫒아와 안방에
둘러앉아서 숨소리도 안내고 텔레비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동네
아이들은 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날 아버지의 멋쩍어 하는 모습이 흑백 텔레비와 함께 흑백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시절 마술상자 속에는 김일아저씨도 아톰도, 요괴인간 뱀 베라
베로도 살아있었다.
신청곡: 조용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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