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따갑던 여름이 힘겹게 물러가자마자 하늘도 높고 바람도 선선해지는군요.
지금은 기온이나 바람이 참으로 알맞고 기분좋은 미풍인데,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지면 낙엽도 떨어지고 바람 역시 스산하게 불겠지요.
그렇게 날씨가 바뀌면 몸과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전 어린 시절의 가을날에 그처럼 몸과 마음이 서늘해진 경험이 있거든요.
요즘은 집을 세 놓을 때 계약기간을 2년으로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6개월에 한 번씩 전세를 다시 계약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봄,가을에는 이사를 다녔지요.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도 길가의 붉은 꽃잎이나 푸르게 우거진 신록이 날 반겨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금방 적응이 되었는데, 가을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갑작스런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하루 아침에 집을 잃고 월세방으로 전전하던 시절, 전 그때 국민학교에 갖 입학한 시기였습니다.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을 때, 친구도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면 어떻게나 마음이 서늘해지던지요.
그러면서 친구를 사귀고 나면 또 다시 이사,이사,이사...
돈이 없어 쩔쩔매던 어머님은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동네로 이사를 가면 이번엔 난데없이 전학을 가서 다시 반 학생들과 서먹서먹한 분위기....
그런 게 싫어서 이사해도 전학을 하지 않으면 학교가 멀어 아는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새벽부터 타박타박 걸어서 가는 마음이란 어찌 그리도 싸늘하던지요.
그 시절 제 마음의 가을은 시리고 아팠던 상처투성이의 상실의 계절이었습니다.
조금 자라서 여중생이었을 때에는 이런 아픔을 달래기 위해 가을에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를 외우며 눈물을 짓곤 했지요.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짓지 못합니다.
하는 싯구에 이르면 시,공간을 넘어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요.
요즘은 다행히 전세계약이 2년이라 전보단 나아진 형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데리고 여의치 않아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경우에는 참으로 힘든 한 시절을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남의 일같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그 속에서 혹 저처럼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란 걸 마음이 시리도록 느끼는 조숙한 여자 아이도 있을까 봐 더욱더 마음이 안타깝고요.
이런 계절에 잘 어울리는 유익종씨의 노래 사랑의 눈동자,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9월에 떠난 사랑 가운데에서 한 곡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