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첫째 아이가 아장 아장 걸어다닐 무렵입니다.
그 때 저는 여수공업단지에 짓는 공장을 설계하고 건축 허가 내느라 서울에서 500km가량 떨어진 곳까지 자주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여수에 건축허가를 내러 내려갔다가 중요한 서류가 누락되어 급히 서울에 올라와야 했습니다.
올라오자 마자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만들고 밤 늦게 차를 타고 내려간다고 하니 아내가 위험하다며 도처히 가게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내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차에 탔습니다.
밤 10시경 집에서 출발해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고 호남선으로 접어 들었는데 짙은 안개가 자주 나타나는데 밤 길에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기 쉽지 않더군요.
자주 눈을 비비며 운전 하던 저보다 아내가 더 긴장했을겁니다.
차가 광주를 거쳐 순천으로 접어들어갈 때 고속도로 옆에 아주 작은 공원이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차를 세웠습니다.
허술하지만 분수대도 있고 나무도 몇 그루 서 있는 이 곳은 마치 요정이 등장하는 낙원처렴 느껴졌습니다.
그 곳에서 아이 엄마와 함께 잠시 내려서 안개 자욱한 간이분수대에서 잠이 깬 아이의 재롱도 보며 잠시 쉬었다가 출발했습니다.
여수에 도착하니 토요일의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내를 여관에 들어가게 하기에는 너무도 답답하고 여관비도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는데 아내가 식당 주인아주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새댁이 고생한다며 식당에 딸린 방을 주시더군요.
저는 안심을 하고 여수시청에 들러 남은 일을 처리하고 점심때 쯤 되어 아내에게 가니 식당 아주머니께서 마련해주신 방에서 아이와 잠을 잘 잤다고 하더군요.
식당 아주머니께 감사히 인사를 하고 여수 오동도를 구경했습니다.
해야 할일이 잘 처리되어 마음이 느긋해진 저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한가롭게 바다를 보며 거닐며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여행을 가족과 함께 그 곳에서 보내고 다음 날 서울로 잘 올라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가던 젊은 날의 추억입니다.
(광주와 순천 사이에 있던 환상적인 간이 분수대는 고속도로가 편도2차선으로 뚤리면서 아쉽게도 사라져 지금은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신청곡: 주병선 칠갑산
이지연 바람아 멈추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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