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가난한 직업군인 아빠의 장녀로 태어난 저는 유년기에 갖고 싶은 걸 내색하지 않는 걸 스스로 터득했었지요. 요즘 제 아이들과 다르게 엄마의 한숨과 아빠의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해서 참는 데 익숙했습니다. 엄마는 적은 월급에서 매월 할아버지댁에 생활비를 드려야 했기에 저희 남매에겐 최소한의 것만이 허용되곤 했답니다.
겨울이면 빨간 털실로 짠 바지를 다시 실을 풀어 커진 제 키에 맞게 새로 짜 주셨지요. 그리고 내복도 한번 꿰매어 입히시다 또 구멍이 나면 헝겊을 대고 다시 꿰매 입히셨어요. 그러면 저는 어린 마음에도 속상하고 특히 목욕탕에 갈 때마다 창피했어요. "엄마, 그만 꿰맨 옷 입을래요. 창피해요."그러면 엄마는 "속에 입는 옷인데 어떠니?" 하셨어요. 속으로만 `난 이 다음에 크면 절대로 절대로 빨간 바지 안 입을 거야. 그리고 속옷도 꿰매 입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었지요.
집안 형편 때문에 새옷도 새 속옷도 안 생긴다는 걸 알면서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친구들이 자신의 곰인형 얘기를 하자 저도 너무나 갖고 싶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차마 가난한 내겐 곰인형이 없다는 얘길할 수 없었던 저는 집에 와서 엄마께 "나 착한 일 많이 하면 산타할아버지가 곰인형 선물로 주시지 않을까?"하고 물었지요. 교회도 안 다니면서 매일매일 성탄절을 기다렸답니다. 저는 교회에 안 다니니까 산타한테 선물을 못 받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도 공부도 잘하고 엄마일도 잘 거드니까 산타도 내 마음 알고 소원 들어 주실지 모른다고 생각했답니다.
드디어 8살 성탄절 아침에 잠깨어 머리맡에 놓인 곰인형을 보고는 너무나 놀라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답니다. "엄마, 정말 산타가 선물 주셨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잠자지 말고 기다려서 산타 만나볼걸. 산타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했네."라며 좋아했습니다. 어린 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보며 엄마는 속으로 우셨을지도 모릅니다. 가난해서 못 해 준 게 너무 많다고 지금도 말씀하시곤 하세요.
산타께 선물받은 그 곰인형을 제가 결혼할 때까지 잠잘 때마다 안고 잤답니다. 다 낡도록 안고 얘기하고 아꼈답니다. 결혼해서 제 딸에겐 정말 너무 많은 인형을 사 주었어요. 인형들 데리고 얘기하며 노는 모습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엄마는 제게 산타의 선물 주신 것 말고도 알뜰하게 사는 생활의 지혜를 선물하셨어요. 난 절대로 꿰맨 옷 안 입을 거라고 다짐한 것과는 다르게 저도 알뜰하게 속옷이나 양말 꿰매 입어요. 고등학생 딸의 스타킹을 꿰매 주니까, 그것도 꿰맨 걸 다시 또 꿰매 주니까 엄마 때문에 너무 창피하다고 투덜거리더군요. 언젠가 제 딸도 결혼하면 저처럼 자기 딸의 옷과 양말을 꿰매 주겠지요. 그리고는 제 생각하겠지요.
곰인형을 선물받은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그 선물보다 저를 감동시킨 선물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그 땐 제가 산타에게 예쁘게 보였다고 좋아했지요. 지금도 착하게 성실하게 살면 산타가 기적처럼 선물 주실까요?
인천 애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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