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서 코 골고 잔 아들 얘기
이인화
2008.01.07
조회 30
날씨가 흐려 마음까지 내려앉았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햇빛을 적게 받아 우울하단 얘기 들은 적이 있는데, 연일 해가 안 비추니 마음까지 흐려집니다.
방금 방송에서 이천 사고 소식 듣고 인터넷 접속해 보니 대형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크답니다. 정초엔 좋은 소식만 들려 오길 바랐는데...

2007년 10월 29일이 저희 부부 결혼 19주년이라 조졸하게 자축하기로 했었지요. 고3 딸을 두고 어디 멀리 갈 수도 없고 해서 둘째 중1 아들만 살살 꼬드겨서 서울나들이를 했더랍니다. 이 무식한 녀석이 클래식 공연은 졸려서 싫다는데도 "너,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인데 축하히기 위해서라도 함께 해야 하는 거 아니니?"했더니 볼멘 목소리로 "네, 알았어요. 이번만 따라갈 게요."하더군요. 딸애 같으면 좋아라 할 텐데 아들 녀석은 음악소리가 자장가 같다면서 싫다는데도 부부만 공연 보고 외식할 수 없어 함께 전철 타고 남편 직장까지 갔답니다. 저녁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해서 저희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스파게티로 결혼기념일 축하 저녁을 먹고 비싼 공연료 낸 공연장에 갔답니다.
1부는 기돈 크레이머와 실내악단이 전통 클래식 연주를 하는데, 배부르게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은 이 아들 녀석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코까지 골고 자는 겁니다. 옆 좌석 젊은 연인은 저희 부부를 한심하다는 듯 안됐다는 듯 쳐다보며 눈치를 주는데 정말 좌불안석이었지요. 아무리 꺠워도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녀석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저는 공연을 보는 건지 마는 건지 아들 코 고는 소리 막느라 진땀을 흘렸답니다. 1부가 끝나자 남편이 자기도 졸린 걸 참느라 죽을 맛인데 아들이 오죽하면 자겠나며 그만 집에 가자는 겁니다. 저는 씩씩거리며 결혼기념일이라고 여행도 못 가고 저녁도 분식이나 먹고 내가 좋아하는 공연장에 와선 부자가 잠만 자냐고 툴툴거렸더니 마지 못해 끝까지 남겠다고 하더라구요. 화풀이는 당연 아들에게 했지요. 꼬집어 깨웠더니, 자긴 이래서 안 오려고 두 분만 기념하라고 했더니 데리고 와선 구박한다고 툴툴툴...

2부가 시작돼서 겨우 정신차린 아들을 옆 좌석 젊은 연인은 계속 겉눈질하며 웃는데 제가 민망했지요.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결혼기념일 자축파티가 이게 뭐예요?"했더니 부자가 싫은 공연 억지로 따라가 졸면서 자리 지켰는데 제가 화낸다며 오히려 섭섭해 하더라구요. 저는 속으로 다시는 클래식 공연에 저 부자는 함께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아마도 그 부자 역시 다시는 졸린 공연 억지로 안 보겠다고 다짐담짐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웃을 일인데 그날은 왜 그리 섭섭하고 야속한지 결혼 19주년을 우울하게 마감했었지요.

나나무스꾸리는 남편도 좋아하니 이번엔 공연에 초대돼도 졸지 않고 잘 볼 겁니다. 금년 50이 된 남편과 저를 꼭 초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천 애청자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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