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집 앞에는 작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 일명 묘지였다. 겨울 저녁에는 사람 인기척이 거의 없는 길이여서 10년 차이 나는 막내고모랑 같이 걸을 때면 신나게 뛰어서 할머니 집으로 향하곤 했다. 고모가 장난 삼아"귀신 나온다, 귀신이 내 다리 내 놔. 내 다리 내 놔 하며 따라 온다"정말 뒤도 안 보고 신나게 앞만 보고 뛰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 보면 숨이 너무 차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그런 의시의시한 길이 아침이 돼면 눈썰매장 저리 가라 했다. 정말 눈썰매 타기 좋은 길이었다. 약간 구부러지고 내리막길도 그리 험하지 않고.
눈만 오면 우리애들의 지상천국이었다. 비닐포대를 하나씩 가지고 나와서 타면 어찌 그리도 잘 달렸는지. 좀 신경 쓰고 준비해가면 나무썰매. 판자지만 그래도 어디야. 땔감으로 쓰려고 놔 둔 곳에서 짱짱한 것을 골라서 막대2개랑 가지고 밖으로 직행. 남자애들 부럽지 않지. 신나게 또 한 판 장식하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것에정신이 팔려 밥 먹으라고 소리치기 전에는 집에 들어갈 줄 몰랐지.
부르지 않았는데 들어가는 경우는 아주 드문 케이스.
일명 띠기 해 먹기. 어른들 없는 시간에 설탕을 훔쳐서 국자랑 가지고 한 집으로 직행. 부풀어 오른 국자에 소다를 치면 모양이 잡히면서 입가에 군침 돌면서 냄비뚜껑에 제대로 부어서 모양 완성. 말이 모양이지. 그냥 눌러놓은 누룽지지.그래도, 어디야. 한 판이라도 더 해 먹고 국자를 씻어 놔야하니까 몸도 마음도 바쁘지. 한 눈 팔았다가는 국자 태워 먹으니까 집중. 또, 집중.
그나마 이렇게 논 경우는 얌전한 케이스. 괜히, 동네 오빠들 따라 다니다 험하게 논 경우는 얼음이 깨져서 신발이 다 젖어 발에 동상이 났었다. 정말 시간이 가면서 어찌나 아프던지. 지금도 그 영광의 동상자국. 여자면서 왜 그리도 남자애들 못지 않게 놀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챙피. 또, 챙피할 노릇.
물이 꽁꽁 얼어서 따뜻한물 부으며 펌프질 했던 그 시절. 널어 놓은 빨래에 새끼 고드름 떼던 그 때. 먹을 것은 귀했지만 너무 놀기 좋은 시간 이었다. 환상의 눈 펑펑 내렸지. 거리에 차 많이 다니지 않아서 눈 많았지.동네에 애들 많았지. 무궁무진한 새 놀이들이 많았었다. 겨울에는 구지 찾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하얀선물이 최고였지.
그 하얀선물이면 다른 것은 눈에 차지도 않았지. 지금은 그 하얀선물 보기도 힘 들고.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만들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재생이 불가능 하니 아름다운 선물이겠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이 하얀선물에 눈을 떼지 못하니. .....
옛날이나 지금이나 겨울 하면 최고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눈.
그 아름다웠던 설경이 새삼 그리워 진다. 펑펑 쏟아졌던 그 하얀설경이. 입김 불어가면서 눈을 뭉쳐서 눈사람 만들어 놨던 집 앞 공터. 항아리 위에 미니눈사람 만들어서 눈으로 뭉쳐 맞히기.
"누구야" 뒤도 돌아 보기 전에 뒤통수 맞히고 도망 갔던 그 시절 . 부엌에서 아침 준비 하시던 엄마 옷 속으로 눈을 뭉쳐서 넣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던 그 시절 . 참 모든 게 그리워 지는 나이가 됐다.
40을 앞두고 유년시절을 회상하니 우리 부모님들은 "유년시절의 겨울" 하면 뭘 회상 하실지.
돌아가신 울 아빠 한 잔 걸치시면"내가 왕년에 뒷동산에 올라가 운동 하며 환호성 지르면 동네 처녀들이 오빠, 오빠"했다며 뻥을 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영화 필름 돌리듯이 한장면씩 스치는 장면들이 내 가슴을 찡 하게 만든다. 다시 돌릴 수 없는 그 예쁜 장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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