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글재주지만,
후...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노트르담...> 공연이 너무 보고싶어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먼저 행복한 가요, 그리고 꼭 제가 좋아할 법한 그 때의 가요들만 엮어서 들려주시는 '영재'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듣고는 있지만, 홈에 들르는 일은 쉽지 않네요.
저는 금천이라는, 전남 나주 촌곡리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학교에선 말없는 조용한 아이로 불렸지만, 집에 오면 형과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녔습니다.
사건은, 소복한 눈이불이 가히 그 두께를 십센티이상을 자랑하던 날, 그날도 제일 만만한 작은 누나와 같잖은 시비가 붙어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로 항전을 벌이고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저에 비해 5학년이었던 누나는 키가 한 뼘은 더 컸기에, 말재간으로도, 힘으로도 당해내기가 힘들었던 저는, 오늘은 반드시 이겨보리라는 각오로, 대뜸 씹고 있던 껌을 누나 정수리에 꾹 눌러 붙인 채, 아버지 고무신을 신고 줄행랑을 쳤더랬습니다.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잡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는데 눈이 사방 천지에 내린 터라, 그만 어디가어딘지 구분을 못하고 정신없이 논바닥에 쳐박히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숨이 차고 정신이 없던지, 어떻게 해서든 누나에게 잡혀서는 안된다는 그 생각에 기를 쓰고 일어서려는 찬라에 뒤에서 악을 쓰며 달려오던 누나의 연탄세례에 그만... 싸늘하게 체포되고 말았답니다. 저의 그 엉망이 된 꼴을 보며 누나는 웃음이 터져나오기는 커녕, 이미 한대박이나 흘렸을법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머리에 붙은 껌 어떡할 거냐며 악을 악을 써 가며 울었더랬습니다.
그후로 며칠 동안 작은 누나 눈치보며 사느라, 참 어린 나이에 맘고생 꽤나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광주에서 이쁜 삼남매 낳아 잘 살고 있는 누나에게, 이 자리를 빌어 언제나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참, 누나는 가엾게도 정수리에 머리를 한움큼 잘라내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니, 정말 제 신세가 딱, 찬밥이었습니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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