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유년시절의 "나"
전익형
2008.01.22
조회 34
유년시절의 나를 생각하면서 사연을 얘기하는 것도 좋은데 솔직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이 더 기대되고 관람하고 픈 생각에 저의 유년시절을 되새겨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가 직업군인으로 복무중인 부대근처 경기도 가평군 일동면 소재지에서 자라고 초등학교 2학년까지 봉수리라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집을 둘러싼 곳은 산밖에 없고 집 주변에는 인삼 밭으로 둘러싸였던 곳으로 생각이 듭니다.

요즘처럼 겨울이면 눈이 어른키의 무릎정도 왔던 기억이 나고 쌍둥이인 저와 형에게 어머니는 캐논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찍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 사람들은 직업이 두 종류인거 같았습니다.
한 종류는 군인가족이고 다른 한 종류는 농사를 짓는 농부라 우리 어머니는 하루 품삯을 벌기위해 밭 일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동네가 과거 6.25때 격전지라 밭을 메거나 우리도 땅을 뒤적 거리면 총알같은 것들이 자주 발견되어 형하고 갖고 놀다가 아버지에게 빼앗기는 일도 종종이었고 동네가 비포장 도로여서 동네 형들하고 버스 정류장 쪽에서 놀다가 정차했다가 지나가는 버스 뒤 범퍼에 몸을 의지해 막 출발하려는 버스 뒤를 매달려서 얼마정도 가는지 시합했던 추억들이 생각나네요

저는 유년시절은 군복과 군인으로만 생각이 나요

이유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군대 유치원인 해산진 유치원이라는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는데 여자 선생님은 한분이고 나머지 3분의 선생님은 군인아저씨 선생님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교육을 시켰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군대 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 통학버스는 큰 트럭군인차를 이용하며 등하교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근무했던 부대 근처 저수지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롱스케이를 싣고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군인아저씨들에게 부터 배워 그 추위에도 열심히 스케이트를 배웠던 기억 지금도 스케이트장을 가면 그 추억을 아내에게도 얘기합니다.

이런 추억도 있지만 가족의 아픈 추억이 많네요

저는 쌍둥이입니다.
우리가 살던 봉수리라는 동네는 너무 작은 동네이기에 쌍둥이는
오직 우리 형제밖에 없었습니다.

형이 아프면 동생이 아파야 한다고 해서 그런지 아팠고, 형이 울면 동생도 울어야만 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그런 동네에 귀여움을 받고 살았던 기억...

귀염움도 잠시 형은 우리가 살았던 집에서 연탄불로 다리와 엉덩이에 화상을 크게 입었던 기억과 어머니가 형아를 들쳐 안고 일동에 있는 개인병원과 군인병원 지금의 춘천 육군병원에서 그리고 내가 태어났던 서울의 큰 병원을 이동하며 수술하며 치료했던 기억들...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친 할머니댁에서 1년이란 세월을 보냈던 기억 참 귀여움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나야 하는 시기에 친적집과 이웃들에게 맡기어 생활했던 기억들...

아버지는 그때의 일로 속상하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집에서 사병들을 데리고 와서 회식을 밥 먹듯이 했던 기억들

가끔씩 어머니를 만나면 형 문제로 싸우셨던 그 모습 이런 일들이 오래전에 기억에서 잊혀 져야 하는데도 잊혀 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렸을 때 우리 동네 봉수리 교회가 설립되면서 나와 깁스를 한 형은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동네 주민들이 하나 둘씩 교회를 다녔고 형아의 아픔으로 우리 가족도 교회를 섬기며 예수 믿는 가정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형도 ,저도 쌍둥이 형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아픈 추억은 아니다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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