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남 진주시 이현동 418번지 ! 이 주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리라. 지금은 그 곳에 아무도 살지 않고 연고도 없어 갈 기회도 없지만 내 맘 속에 살아 있는 영원한 고향! 이렇게 맨발의 이사도라처럼 눈발 날리는 날이면 내 생각은 하염없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만다.
마을 앞으로는 작은 내가 흐르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야 말로 그림같은 배산임수의 환경이었다. 넓은 들을 둘로 가르면서 흐르던 나불천은 겨울이면 우리에게 좋은 스케이트장을 허락했고 여름이면 매미 울음소리로 가득찬 천연의 수영장을 제공했다.
나에게는 3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썰매를 또는 연의 얼레를 뚝딱 뚝딱 잘도 만들었기때문에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니니는 골목대장이었고 나도 그아이를 오빠 대하듯 존경스레 대하기가 일쑤였다. 나의 썰매도 언제나 그 아이가 만들어 주고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썰매나 눈싸움 보다는 특히 연싸움에 관심이 많았고 거기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었다. 그 시절 오늘날같이 질긴 나일론 실이없던때라 무명실에 아교를 먹여서 연줄을 질기게 만들어 쓰던 시절, 동생은 어떻게 알았는지 구하기 힘든 아교풀 대신 동네 사금파리란 사금파리는 다 줏어 모아 그걸 굵은 자갈돌로 곱게 갈아 밀가루처럼 만든후 쇠죽 쑤던 가마솥 아궁이에 찌글어진 냄비하나 걸어 풀로 쑨후 그것을 연줄에 소나무 잎으로 된 붓으로 발라 나가던 모습은 하나의 경건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렇게 사금파리 풀 먹인 동생의 연줄은 동네 아이들의 모든 연을 다 끊고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넓은 하늘을 날으곤 했는데 난 그 경이로운 광경을 감격스런 눈으로 바라보곤했다.
그런 동생이 45세의 짧은 나이로 하늘 나라로 간지 어언 5년, 조카들을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올케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날리는 눈발과 함께 내가슴에 흐르는 냉기 데울길 없어 목놓아 울어 본다. 올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데 현실은 또 그렇지 못하고......감사합니다.
나의 겨울 유년 시절! 너무나그리운 내 동생
신미자
20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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