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타임머신을 타고
한지선
2008.01.22
조회 16

어덞살의 유년에 대한 추억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지금 제 나이가 몇인지 잠시 잊은 것 같네요.
마치 아홉살 인생의 꼬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구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저는 유독 길을 많이 잃어버려서
부모님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일이 잦았어요.
특히나 비가 오는 날이면 방향감각이 없어져 더 심했죠.

여덞 살,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고,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한 해였어요.

그 해 겨울 전학을 와서 맞은 첫번 째 방학이었어요.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시내에 있는 병원을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던 저는,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품고 아침에
집을 나섰죠. 가족들에겐 물론, 걱정 말라며 큰 소리를
빵빵 쳐가면서요.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자로 손등을 맞아가며 바이엘을 치고,
레슨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갔어요.
저는 축농증으로 인해 어렸을 때, 지겹게도 이비인후과를
다니면서 약을 먹고, 치료를 했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편도선 수술을 해서,
그 이후로는 축농증이 거의 나았지만요.

암튼, 그렇게 병원을 갔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저는
깜빡 잠이 들어버렸어요.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서 일어나보니 기사 아저씨셨어요.

"꼬마야! 넌 집이 어디냐?"

주위를 돌아보니 이미 깜깜해졌고,
전 너무 무서워서 그만 울어버렸어요.
친절한 아저씨는 저를 다독이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일러주었지요.
차비까지 내주시면서요.
저는 안심이 된 맘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갔어요.

헌데 현관문을 들어서자 무슨 초상집 분위기가 나는 게 아니겠어요.
어머니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성통곡을 하고 계시고,
아버지는 말 없이 담배만 태우시고,
언니는 아버지 어머니 뒤에서 말 없이 울고 있고요.

저는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면서 달려갔죠.
그러자 어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기절한 듯 놀라시며
맨발로 뛰어나와서는, 저를 꼭 끌어 안고 놔주질 않으시는 거예요.

휴대폰도 없던 시절,
돌아올 시간에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막내딸을 기다리다
식구들은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저녁밥도 안 먹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거예요.

언니는 울면서 이런 말을 했죠.

"미안, 새로 산 니 책상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니가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했어.
이제 니 책상 갖고 싶다고 욕심 안부릴게. 미안해."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가족들끼리 둘러 앉아서
그 때 일을 얘기하곤 해요.
사실 저는 별로 걱정을 안 했었는데,
가족들이 저를 그렇게 사랑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여덞살 때 버스에서 졸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종점까지 갔다가 집에 늦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그 사랑이 얼마큼인지 깊이 와닿지 않았을거예요.

20년이 지난 겨울,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나의 여덞 살, 그 해 겨울은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새삼 느낀, 저에겐 아주아주
소중한 계절이었답니다.

이 기회를 통해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곁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 주는 것에 늘 감동한다고
꼭 전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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