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잔잔한 음악과 유영재님의 목소리로 이 겨울을 보내고있습니다.
그러다 2008년이 유가속의 8살이 되던 해라는 기쁜 소식도 들려오네요.
유가속의 7주년 7이벤트,유영재님의 생일도 있었고..
모든 것들의 축복으로 다가와 유가속가족들과 똘똘 뭉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 기쁩니다.
저도 8살의 겨울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어 너무 소중한 시간이 될것같네요
저의 8살의 겨울이라..
다른 분들처럼 시골에서 고구마를 구어 먹고,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농사를 짓던 시절의 아버지 시절이 아닌 저의 8살은 한창 일과이분의 일이 유행하던 시절이였답니다.
그래도 그때가 벌써 20여년이 지난 시절이기에 그리워 지네요.
저의 어린시절은 부모님은 맞벌이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거의 함께 보내지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을나가실때마다 식탁에는 오백원짜리 두개를 나란히 두고 가십니다. 하나는 제것. 하나는 오빠것.
요즈음은 그 오백원으로 과자하나 먹을 수 없지만, 그때의 오백원이란 불량식품과자에 막대사탕과 덴버껌(풍선껌)까지 먹을 수 있었지요.하지만 막대사탕과 풍선껌을 먹기란 보통 어려울수가없었답니다. 왜냐면 항상 오빠에게 빼앗겼으니 말이예요.^^ 그럴때면 그 아쉬움을 달랠려고 집에있는 국자를 태어먹으며 달고나를 먹었지요. 달고나의 맛도 잊을 수 없지만 그때 국자 태어먹어 엄마테 맞은 기억도 잊을 수 없네요^^
그렇게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고는 부랴부랴 집에 뛰어 들어가지요. 왜냐면 이맘때는 겨울방학이라 탐구생활을 라디오로 듣거나 티비를 시청해야했지요.지금처럼 컴퓨터가 없었기때문에 그 시간을 꼭 마추어야 했답니다. 사실 부랴부랴 집에 뛰어들어가는 것도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지요. 동네친구들과 뛰어 놀고 불량식품을 먹고 나면 탐구생활시간이든 일기를 쓰는것은 겨울방학끝자락에 고민거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서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썰매를 타줘야 했답니다. 그때의 저의 집은 주택단지가 끝나는 구석 언덕이였습니다.
저의 집은 기와집이였는데 기와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해 이곳저곳 비오면 비떨어지는 곳을 매꾼 시멘트 자국하며 일시방편으로 라면 박스들이 걸쳐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썰매를타기에 라면박스 하나면 기똥차게 잘 미끄러져 내려가는 썰매였답니다. 그리고 썰매의 마무리는 고드름 먹기! 지금은 더럽다고 고드름은 먹는것은 사라졌지만 그때만해도 고드름은 사이다의 달달한 맛이 난다고 없어서 못먹는거였지요. 또한 누가누가 더 큰 고드름을 가지고 오나도 시합하고 그걸로 칼싸움도 하고요~ 이렇게 고드름애기를 하자니 왜이렇게 신나지는지요^^
눈이 다 녹고, 눈이 사라졌을때는 저의 동네만의 놀이가 있었답니다.
자전거 놀이였지요. 저의 동네에서 밤 6시면 하는 놀이, 자전거 놀이였습니다. 말이 놀이지 그냥 자전거를 타는 거였지요^^ 그래서 그 동네의 꼬맹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몇일간은 엄마와 싸워야했찌요.자전거 사달라고 떼도 써보고 울어보기도 하고..저의 집도 그렇게 해서 자전거를 하나 장만하게 됐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라는 겁니다. 하나도 너무 값진 것이기 때문에 두개는 너무 무리였지요. 그러니 또 오빠와 저의 싸움은 이틀에 한번은 하게 되지요.하지만 이것은 결과가 뻔히 정해져있는 싸움이였겠찌요?.자전거로 집과 집사이를 줄지어 돌면 저와 같이 자전거 쟁탈전에서 진, (그러니깐 거의 동생들이겠지요^^)동생들은 신호등을 맡았답니다. 빨간불 파란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한 7시정도 저녁시간이 되면 엄마들이 나오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갑니다.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나네요. 어둠이 와 퍼런 하늘에 전봇대에 몇개의 불이 들어와있고 덩그러니 자전거와 오빠 그리고 제가 남아있는 그림이요. 그렇게 남겨진 오빠와 저는 둘이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에 나갑니다. 엄마아빠를 기다리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너무나 가혹한것은 그앞에 빵집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냄새가 그냥 맡아도 솔솔솔 고소한것이 배고픈 저녁시간에 맡기란 말 못할 고통이였답니다. 그러면 아침에 엄마가 식탁에 두고간 5백원으로 사고 남겨둔 뎀버껌(풍선껌)을 반씩 나누어서 오빠와 나누어 먹습니다.그리고 뎀버껌에 붙어 있는 그림을 손등에 붙이고 심심함을 달레며 기다리다가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이 너무 가슴이 아프셨나봅니다. 그후에 가게근처에 있는 집을 얻어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식탁에 놓여진 오백원도, 그리고 고드름도.. 자전거 놀이도 하지 못하게 되지요. 그리고 20년이 지났네요-
20년이 지나 키도 크고 나이도 열손가락으로 셀수 없게 불어나버렸네요. 다시 제 8살이 그립네요.
[유년]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던 8살, 그립습니다.
최민경
200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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